50억원 미만 거래 시 내부자 사전공시 의무 면제
루닛 임원, 사전공시 피한 쪼개기 블록딜 ‘도마 위’
주가 부양 위한 매수 때도 기준 살펴야···효과 반감 지적도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올해 하반기부터 내부자거래 사전 공시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허점이 일부 드러나고 있어 주목된다. 사전 공시 의무를 피한 쪼개기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사례가 나오는 한편, 사전 공시 탓에 특정 규모 아래로 매수를 해야 해 주가 부양 효과를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지적되고 있다.

1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의료 AI(인공지능) 기업 루닛의 임원 6명과 주요 주주 1인 등 7명은 보유 주식 일부를 블록딜 방식으로 전날 미국계 롱펀드 운용사에 매각했다. 매각된 주식은 38만334주이며 매각 금액은 총 300억원 규모다. 루닛 측은 이번 블록딜이 임원들의 대출금 상환 등 목적이라고 밝혔다.

루닛 임원들의 이번 블록딜은 내부자거래 사전 공시제도의 허점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내부자거래 사전 공시제도는 상장사 최대주주나 임원, 지분율 10% 이상 주주들이 주식을 거래하기에 앞서 최소 30일 전에 보고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제도로 지난 7월 이후 시행됐다. 

내부자거래 사전 공시제도는 발행주식 총수의 1% 미만이면서 거래 규모가 50억원 미만일 경우 보고 의무를 면제하는데, 루닛의 임원들은 50억원에 미치지 않는 49억9993만3704원에 각각 매각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블록딜로 인해 전날 루닛 주가는 10%가량 급락했고 쪼개기 블록딜 의혹으로 투자자들의 눈총을 받았다.

그래프=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프=정승아 디자이너.

내부자거래 사전 공시제도의 맹점은 반대의 사례에서도 나타났다.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은 지난 16일부터 전날까지 3거래일 동안 메리츠금융지주 주식 5만주를 평균 9만8953원에 사들였다. 계엄 사태와 탄핵 이슈로 메리츠금융지주 주가가 하락하자 지분 매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김 부회장이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에 따라 한도 내에서 최대 규모를 사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3거래일 동안 이뤄진 김 부회장의 매입 금액은 49억4763억원으로 내부자거래 사전공시 의무 기준인 50억원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 역시 내부자거래 사전 공시제도의 한계로 볼 수 있다는 평가다. 통상 내부자들의 주식 매입은 주가의 저평가 신호로 해석되거나 주가 부양 의지, 책임 경영 강화 등으로 읽히는데, 이번과 같이 주가가 급락한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50억원 이상을 사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이 같은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내부자거래 사전 공시제도의 개선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쪼개기 지분 매각은 제도 도입 이전부터 우려됐던 사항이었다. 한 명의 쪼개기 지분 매각은 시장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그룹으로 묶여 규모가 커질 경우 부정적일 수 있다”며 “제도 도입 반년이 되어가는 만큼 한계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겠다”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