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탄핵 정국 속에서도 지수 개편 및 공시 연이어
밸류업 빈껍데기 우려 속 실제 시행 여부가 정책 운명 가를 듯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탄핵 정국을 맞은 가운데 밸류업 시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어 주목된다. 지수 특례 편입뿐만 아니라 주주 가치 제고책을 내건 상장사들의 공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세제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장사들의 약속 이행 여부가 정책의 운명을 가를 핵심 요소로 평가된다.
17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KB금융, 하나금융지주, SK텔레콤, KT, 현대모비스 등 5종목을 신규 특별 편입하기로 했다. 이에 기존 100종목이던 밸류업 지수는 105종목으로 늘어나게 됐다. 내년 6월 정기 구성종목 변경 시 밸류업 지수는 100종목으로 다시 조정될 예정이다.
밸류업 지수는 수익성, 주주환원, 시장평가, 자본효율성이 우수한 종목으로 구성한 우량기업지수다. 밸류업 종목으로의 자금 유입뿐만 아니라 상장사들의 기업 가치 제고 의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내세운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효성을 높일 핵심 중 하나로 꼽힌다.
아울러 한국거래소는 지수 발표와 함께 밸류업 펀드 추가 조성에도 나서기로 했다. 한국거래소는 한국증권금융‧한국예탁결제원‧한국금융투자협회‧코스콤 등 증권 유관기관 5곳이 공동으로 이번 주에 3000억원 규모의 2차 밸류업 펀드를 추가 조성한다고 밝혔다. 이들 5개 기관은 지난달 4일 2000억원 규모의 1차 밸류업 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당초 탄핵 정국 속에서 밸류업 정책은 힘을 잃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밸류업 정책의 타임라인 여전히 진행되면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상장사들의 밸류업 공시도 연이어 이어지고 있는데, 계엄 사태와 탄핵 이슈가 확대된 상황에서도 주주 가치 제고 계획을 밝힌 상장사들이 다수 있었다.
실제 계엄 사태가 발생했던 지난 3일 밤 이후 17곳에서 밸류업 공시를 내놨다. 지난 5일 기업은행과 9일 파트론을 시작으로 10일 KG이니시스, 이녹스첨단소재, 유안타증권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했다. 12일에는 현대엘리베이터, HD현대건설기계, AK홀딩스가 공시를 했고 13일에는 제주항공, HD현대미포, HD현대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이 계획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이후에도 밸류업 공시는 이어졌는데 16일 애경케미칼, 두산밥캣, HD현대, HD현대인프라코어가 기업가치 계획 공시를 했고 17일에는 HD현대마린솔루션이 밸류업 방안을 발표했다. 정책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음에도 기존 계획대로 밸류업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다만 밸류업 정책이 빈껍데기가 아닌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기 위해선 상장사들의 이행 여부가 중요할 전망이다.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주주환원 증가액 5% 법인세 세액공제’, ‘밸류업 기업 가업상속 공제 2배 확대’ 등 밸류업 세제 혜택이 백지화되면서 상장사들이 밸류업 이행에 나설 유인이 줄어든 까닭이다.
현재 밸류업 이행 사항에 대해 공시를 한 상장사는 메리츠금융지주와 에프앤가이드 두 곳에 불과하다. 밸류업 계획 공시나 계획 예고 공시가 127건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두드러진 모습이다. 밸류업 계획을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공시가 내년에 상장사들 사이에서 쏟아질 경우 밸류업 정책이 다시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상장사가 기존에 계획한 밸류업 공시를 올린 것에서 그칠 수 있지만 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주주가치의 중요성이 국내 증시에서 자리 잡은 결과로도 볼 수 있다”며 “상법이나 자본시장법 개정 등과 맞물려 주주가치 제고 움직임은 내년에도 화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이름은 달라질 수 있어도 기조는 이어질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