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탄핵 정국 맞아 정부 추진 밸류업 프로그램 동력 상실 관측
자본시장법 개정안 등 법안 밸류업 필요 법안 계류···통과 여부도 미지수
정책 이행 여부 두고 불확실성 확대···'대표 수혜주' 금융주 주가 줄줄이 하락
기업별 기존 주주환원정책 백지화 우려···당분간 시장 변동성 확대 불가피

비상계엄 선포 악재로 인해 금융주의 낙폭이 커지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 정책을 동력으로 업종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상승세를 보였던 금융주 주가가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비상계엄 선포 악재로 인해 금융주의 낙폭이 커지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 정책을 동력으로 업종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상승세를 보였던 금융주 주가가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증시 활성화를 위해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이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맞아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의 정책 이행 여부를 놓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밸류업 대표 수혜주로 꼽혔던 금융주들의 주가가 줄줄이 하락하는 가운데 기업별로 공언했던 기존 주주환원 정책들도 결국 백지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일 종가 기준 비상계엄 사태 직전(3일 종가)과 비교하면 'KRX 은행' 지수와 'KRX 보험' 지수는 각각 5.04%, 3.57%씩 하락했다. 개별 종목별로는 KB금융지주 16.29%, 신한금융지주는 9.36%, 우리금융지주는 6.42%, 하나금융지주는 8.16% 씩 떨어졌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사태는 6시간 만에 마무리됐지만 그 동안 유입됐던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며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이후 지속 하락했다.

그 동안 금융 업종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추진된 연초부터 수혜 기대감에 수급이 집중됐다. 업종 중 가장 적극적으로 밸류업 정책에 발맞춰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행된 5월 27일부터 전일(5일)까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62개사 중 11개사(17.7%)가 금융업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업종 중 가장 높은 비중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금융주가 부진한 국내 증시에서 주도주 역할을 하자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집중돼 왔다.

하지만 지난 3일 계엄 사태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국장 탈출이 심화되자 금융주에서도 매도 행렬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4~5일 4대 금융지주로 분류되는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에 대해 강한 매도세를 보였다. 개별 종목별로 살펴보면 KB금융지주를 2224억원 순매도했고 신한금융지주(935억원)·하나금융지주(400억원)·우리금융지주(143억원) 등의 순으로 주식을 팔아치웠다.

특히 5일 코스피 시장 외국인 매도액 중 절반은 은행주로 나타났다. 외국인 투자자의 코스피 시장 순매도액 4071억원 중 KRX은행 지수를 구성하는 금융주 10종목 주식의 순매도 규모는 총 1904억원6000만원에 육박했다.

이 같은 투자자 이탈은 정부가 연초부터 공들인 밸류업 프로그램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추진 동력이 돼야 할 법안 개정 필요 안건들이 빠르게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 중인 상황에서 현 정권의 리더십과 유지 여부에 대해 빨간불이 들어와 밸류업 프로그램이 동력을 상실할 위험이 크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정부는 일반주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해 발의할 예정이었지만 정국이 혼란을 겪으면서 입법 과정에도 제동이 걸렸다. 계엄 여파로 인해 혼선이 빚어지며 개정안 제출이 안갯속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설령 개정안이 어렵게 제출되더라도 통과 여부 또한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김윤정 LS증권 연구원 보고서를 통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로 정책 추진의 동력이 돼야 할 법 개정안들이 국회에 계류 중이던 상황이었다"며 "이번 사태로 현 정권의 리더십과 정권 유지 여부에 대해 빨간불이 켜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금융 업종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 최대 수혜주로 주목받은 만큼 다른 업종 대비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그 동안 시장에서는 오는 20일 코리아 밸류업 지수 특별 리밸런싱(구성종목 변경)을 앞두고 금융주들의 편입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이번 계엄 사태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계엄 사태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부의 밸류업 정책 이행에 대한 불안감이 확대되며 기업별 기존 주주환원정책들이 백지화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업계에서는 주주환원정책들이 온전하게 이행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으나 기업 공시 책임, 국내 증시의 국제 신뢰도 등을 고려하면 모든 것이 백지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비현실적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공들인 밸류업 프로그램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며 "현 상황에서 연중 발표한 주주환원 정책을 원안대로 이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는 합리적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당분간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겠지만 결국 증시 방향은 경제 논리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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