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업대출 확대 목표 달성 확신해
CET1 권고치 미달···기업대출 급증 원인
횡령 등 금융사고도 CET1 하락 불러와
M&A·주주환원 확대 차질 빚을 가능성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지난해 우리금융지주 최대 계열사 우리은행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선언했다. 우리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을 매년 10조원 넘게 늘리겠단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 사이에선 놀랍단 반응이 나왔다. 우리금융은 자본비율 여력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금융은 비은행 사업 강화를 위해 굵직한 인수합병(M&A)도 해야 하며, 배당과 자사주 등 주주환원 규모도 늘려야 했다. 모두 자본비율 하락을 불러오는 요인이다. 이에 당시 간담회에선 당연히 목표 실현 가능성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임원들은 ‘호언장담’했다. 우량 차주들 위주로 대출을 확보하면 현재 자본비율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에 수긍할 기자들은 많지 않았다. 우량 중소기업 고객은 다른 은행도 모셔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금융이 경쟁사보다 더 많은 우량차주를 확보할 수 있는 근거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예상대로 우리금융의 올해 3분기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11.96%로 당국이 권고하는 12%선 아래로 하락했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권고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나머지 금융지주는 모두 13%를 넘어섰다. 특히 KB금융은 13.84%로 우리금융 대비 2%포인트 가까이 크게 높았다.
CET1는 금융지주의 예상치 못한 손실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자본비율 지표다. 금융지주는 이 지표가 당국의 권고치 이상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대출자산 성장 목표치를 정하며, 인수합병(M&A)이나 주주환원 정책도 결정한다. CET1은 자기자본(보통주)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눠 산출한다.
CET1 하락의 원인은 기업대출 확대로 인한 신용리스크의 급증이다. 올해 1~9월까지 우리금융은 은행 부문에서 중소기업 대출을 약 10조원 늘렸다. 그 결과 같은 기간 신용리스크 규모는 14조원 증가했다. 작년 한 해 동안 기록한 증가규모인 11조5000억원 대비 2조5000억원 더 불어난 것이다.
여기에 횡령 사건 등 그간 발생했던 금융사고도 지표 하락에 기름을 부었다. 우리금융의 최대 계열사 우리은행에선 지난 2022년 700억원 규모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으며, 올해도 한 영업점 직원이 180억원의 회사 자금을 유용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영향으로 우리금융의 올 3분기 운영리스크는 2분기 대비 약 9000억원 증가했다. 5대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많이 늘었다.
이에 우리금융은 자본비율 관리를 위해 부랴부랴 기업대출 문턱을 높이는 등 물량 조절에 들어갔다. 기업금융 명가를 선언한 지 1년여 만에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우리금융 조직 내·외부에선 현 경영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애초에 현실을 무시한 채 목표치를 너무 높게 잡았다는 것이다. 특히 영업 일선의 직원들은 그간 기업대출 확대를 위해 상당한 업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당장 우리금융은 올해 주주환원 규모를 늘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금융은 최근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중장기적으로 CET1 13% 비율을 유지하면서 총 주주환원율을 50%까지 끌어올린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선 올해부터 배당과 자사주매입 규모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CET1이 권고치를 밑돌면 금융당국이 주주환원 확대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M&A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우리금융은 지난 8월 동양·ABL생명을 인수하기로 했지만, 금융당국은 인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부당대출’ 사건이 터지자 당국은 우리금융이 M&A를 할 능력이 되는지 경영 전반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특히 당국은 우리금융의 낮은 자본비율을 문제 삼고 있다.
물론 경영진은 다소 실현하기 어려워 보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조직원들을 독려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현실을 등한시한 목표를 강요하는 것은 회사 전체에 부담만 키울 뿐이다. 정확한 현실 판단과 단계적인 목표 설정 만이 회사와 구성원이 모두 살 길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