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자문센터장 ] 우리가 자주 쓰는 말 가운데 ‘체면’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전통적으로 서양보다는 동양 사람들, 특히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이 즐겨 사용한다. 문제는 체면에 매이다보면 내용보다는 형식을, 실력보다는 허세를, 실리보다는 명분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부동산에 투자할 때도 마찬가지다.
중국 최고의 정치가이자 개혁가로 손꼽히는 등소평은 이른바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으로 대변되는 실용주의 경제노선을 채택해 중국이 오늘날과 같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데 초석을 다졌다고 한다. 등소평이 중국의 미래를 위해 지난 수천 년간 이어져온 체면이라는 중국인의 고질병을 과감히 치유하고 경제성장이라는 실속을 챙긴 것이다.
실속형 부동산 투자 덕분에 갑부로 거듭난 A씨의 사례를 들여다보자. 그가 지금껏 이어온 투자행태를 살펴보면 체면보다는 실속에 무게중심을 두는 부동산 투자법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다. A씨는 지난 25년간 수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부동산에 투자해왔다. 그럼에도 단한번의 실패도 없이 성공을 이어갈 수 있었던 까닭은 전적으로 체면을 버리고 실속을 챙겨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A씨는 보통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독특한 투자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한 줄로 표현하면 “체면을 버리면 돈이 보인다.”로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부동산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체면 때문에 남들이 투자하기를 주저하는 경·공매물이나 부실채권(NPL)매물 혹은 대물변제매물을 꺼려하지 않았다.
A씨의 첫 번째 투자대상은 대물변제용 매물로 나온 오피스텔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어느 봉사단체의 열성멤버였던 그는 같은 회원이면서 동갑내기였었던 전기설비공사업자 B씨와 유난히 돈독한 관계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IMF 외환위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특히 하청전문 전기설비공사업체를 경영하고 있었던 B씨로서는 급작스런 IMF 외환위기는 치명적이었다.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원청업체인 시공사들이 줄도산하자 하도급 공사대금을 받을 길이 막막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A씨는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B씨로부터 공사대금 대신 확보해둔 인천시 소재 대물변제용 오피스텔 수십 채를 분양가의 60% 수준(채당 3,000만 원선)에서 매입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잠시 고민도 했지만, 시장조사를 마친 후 투자를 결정하게 된 A씨. 당시 해당 오피스텔 1채의 분양가는 5,000만 원선이었고, 거래는 드물었지만 매물로 나온 물건의 시세가 4,000만 원에서 4,300만 원 수준이었기에 채당 최소 1,000만 원에서 최대 1,300만 원의 투자순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설령 경기불황 여파로 거래가 활발치 않아 조기에 매도를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인천시청을 배후로 도보 5분 거리 내 위치한 만큼 임대수요가 꾸준했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비록 개별부동산의 규모가 작았고, 대물변제용이라 제3자가 바라보는 시선도 다소 곱지 않았지만,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나온 매물이었기에 체면보다는 실속을 챙기기로 결심한 A씨.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IMF 외환위기가 끝나고 빠르게 경기가 회복되면서 한동안 분양가 밑으로 추락했던 오피스텔 가격도 분양가 이상으로 상승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수년 뒤 A씨는 매입한 오피스텔 모두를 분양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각해 큰 차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한편 A씨가 즐겨 찾는 또 다른 투자대상 중 하나로 법원경매물건이 있다. 사실 그가 법원경매를 통한 부동산 매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십수 년 전 고등학교 송년모임에서 후배이자 경매컨설팅업자 C씨를 만나게 되면서였다. 그 당시 A씨는 가까운 시일 내 치러질 자녀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함께 거주할 고급단독주택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서울 성북동에 소재한 대지면적 660㎡ 수준의 2층짜리 단독주택이어야 하며, 가급적 남향에 폭 6M 이상의 도로에 접해있어야 하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던 까닭에 가격을 떠나 이런 조건을 갖춘 매물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후배 C씨로부터 법원경매시장에 그간 찾고 있었던 매물이 나왔으니 한번 입찰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제안 받은 경매물건은 대지면적 638㎡에 2층 단독주택으로 최초감정가 28억 원에 나온 후 1회 유찰돼 2회 입찰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양호한 매물이었음에도 쉽사리 주인을 찾지 못한 이유는 낙찰금 외 인수해야할 선순위 임차인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세히 들여다보니 주거용부동산 경매의 경우 선순위 임차인이 소유자의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일 경우 위장임차인으로 밝혀지면 추후 낙찰자에게 전가되지 않고, 또 설령 인수해야할 보증금으로 판명될지라도 이를 입찰금액에 충분히 반영시켜 낙찰을 받으면 자연히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데서 발생했다. A씨의 지인들은 물론, 가족들조차 “신혼집을 경매로 사는 게 말이 되느냐”, “경매로 남의 집을 빼앗는 게 사람이 할 짓이냐”는 등 체면을 의식한 걱정스런 조언을 쏟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원하던 부동산을 시세보다 값싸게 매입할 수 있다면 체면보다는 실속을 챙기기로 했다. 결국 A씨는 시세(35억 원)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23억 원, 시세의 65.7% 수준)에 낙찰을 받음으로써 체면보다는 실속에 투자했다. 투자할 때부터 이미 큰 차익을 남긴 A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