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노조법 위반 사건 수사 중 확보된 통화녹취
변호인 “별건 수사 활용은 위법” vs 검찰 “별도 영장 발부받았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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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SPC그룹 관련 수사정보를 제공받고 검찰 수사관에게 상품권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SPC 임원이 항소심에서 이 사건 핵심 증거인 통화녹취 파일의 적법성을 새롭게 문제 삼았다. SPC의 노조법 위반 사건으로 압수수색된 증거가 별건인 수사정보 거래 사건에 활용된 것은 위법한 증거수집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은 적법한 영장에 의해 압수된 증거물이고, 1심에서 문제 삼지 않았던 내용을 새롭게 주장하는 피고인의 태도는 진지한 반성을 의심케 한다며 1심보다 중한 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맞섰다.

뇌물공여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SPC 백아무개 전무의 변호인은 8일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한창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변호인은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과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면서 “이미 삭제·폐기 돼야 했을 별건 압수증거가 수사에 활용됐으므로 위법하다”라고 말했다.

백 전무 측이 문제 삼은 증거는 SPC 노조법 위반 사건 수사 관련 압수수색 영장(제1영장)으로 확보된 통화녹취다. 검찰은 제1영장으로 확보한 통화녹취를 2023년 11월11일에 디넷(검찰청 통합디지털증거관리시스템)에 저장했고, 디넷에 저장된 통화녹취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번 수사정보 거래 사건의 혐의점을 포착해 같은 달 24일 제2영장을 발부받아 수사에 활용했다.

지난 4월 대법원은 검찰이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한 뒤 영장에 적힌 범죄 혐의와 관련 없는 전자정보까지 디넷에 보관하다 별건 수사에 쓴 것은 영장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위법한 증거수집’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검찰은 “압수물 중 선별된 파일이 디넷에 업로드 된 후에야 검사들이 이를 분석할 수 있고, 11월14일 당시에는 노조법 위반 증거로 판단을 한 상태였다”면서도 “업로드 이후 그 정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수사정보 거래) 혐의점을 발견하고, 적법절차를 더욱 분명히 한다는 목적 아래 제2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다. 법원에 설명도 했다. 범죄와 무관한 정보를 디넷에 보관하고 있다가 이를 선별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또 “피고인은 항소심에 이르러 위법수집증거 주장을 하고, 황재복 그룹 사장까지 연루된 뇌물공여 사건을 단순히 친소관계에 의한 범행이라고 축소하고 있다”면서 “진지한 반성을 하는지 의문이고, 이에 따라 1심의 형은 과소하다”라고 주장했다.

재판장은 “영장을 발부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적법성이) 충분히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노조법 위반 사건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 관계를 자료로 제출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이날 검찰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고 설명했다. 유출된 황재복 SPC 대표이사 사장에 대한 출국금지 정보와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배치표 등을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부분, SPC가 준비한 상품권 중 공여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일부 무죄가 선고된 부분 등을 문제 삼았다.

뇌물을 수수한 김아무개 수사관에 대해서도 “베테랑 수사관이 스스로 SPC 그룹 수사 담당자임을 밝히면서 수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금원을 수수한 사안으로 다른 공무상 비밀 누설 및 관련 뇌물 사건과 비교해 보더라도 그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면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피고인 김씨의 원심의 형은 지나치게 가볍다”라고 밝혔다.

백 전무의 양형에 대해서는 “그룹 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검찰 수사관에게 뇌물까지 공여하는 등 중대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공무원 직무의 불가매수성, 공무 집행의 공정성 등을 고려할 때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김 수사관의 변호인은 “(1심은) 수뢰 관련 부정처사와 적극적 요구를 특별양형인자의 가중요소로 판단했다”면서 “피고인이 먼저 선물을 달라고 한 사실이 없고, 진지하게 취업을 청탁한 사실이 없으므로 1심의 양정은 심히 과도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오는 29일 백 전무와 함께 일한 이아무개 SPC 부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하고, 재판을 종결하기로 했다.

김 수사관은 2020년 9월~2023년 5월 백 전무로부터 60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고 허영인 SPC 회장과 황재복 SPC 대표이사 사장과 관련된 각종 수사정보를 건넨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SPC그룹 내 파리크라상의 자회사 PB파트너즈의 ‘민주노총 노조 탈퇴 강요 의혹’(노조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던 중 압수한 백 전무의 휴대전화에서 수사정보 거래 정황을 포착했다. 백 전무가 황 대표에게 관련 사실을 보고한 내용이다.

당시 검찰은 SPC의 노조법 위반 사건 외에도 허영인 회장과 황재복 대표이사의 공정거래법 위반 및 배임 혐의도 수사 중이었다. 허 회장은 계열사 주식 저가 매각과 관련 배임으로 기소된 형사사건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노조법 위반 사건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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