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가정 규제·할인률 현실화···자본건전성 악화
트럼프 정책, 금리 상승 가능성···건전성 개선 효과
국내 경기침체 심화되면 보험사에 '악재' 전망도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로 자본건전성에 비상등이 켜진 보험사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은 호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 기간 동안 시중금리가 오히려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면 보험부채가 줄어들어 자본건전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다만 트럼프 당선의 여파로 국내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 보험사에 오히려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보험사 새 회계제도(IFRS17) 관련 가이드라인을 추가로 정했다. 지난해 9월 이후 회계 관련 두 번째 당국의 조치다. 이번엔 보험사들이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무·저해지 상품에 대한 게리적 가정값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해 규제안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당국은 보험부채의 현재가치를 측정하는데 있어 활용되는 할인율을 현실화하는 정책도 결정했다.
당국은 이번 규제로 보험사들의 자본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은 지난 6월 말(217.3%) 대비 20%포인트 내외로 크게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우선 이번 안이 시행되면 할인율 하락으로 보험부채가 늘어나 자본건전성이 악화된다. 더불어 계리적 가정값을 당국의 방침대로 정하면 보험사의 미래이익인 보험계약마진(CSM)이 줄어들어 킥스 비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킥스를 산출할 때 CSM은 보험사의 자기자본(가용자본)으로 포함된다.
특히 단기납 종신보험을 대거 판매한 생명보험사들은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납 종신보험도 저해지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이번 규제안의 핵심 상품 중 하나다. 손보와 달리 생보업계는 대형사들조차 자본건전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보사 ‘빅3’에 포함되는 한화·교보생명의 올해 6월 말 기준 킥스는 각각 162.8%, 161.24%를 기록했다. 당국의 권고치인 150% 선을 겨우 넘긴 상황이다. 두 보험사는 단기납 종신보험을 적극적으로 판매한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트럼프의 당선으로 보험사들의 자본건전성 수준은 예상보다 많이 하락하진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시중금리의 하락 속도가 느려지거나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지난 6일 미 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은 4.4%선까지 급등했다. 채권 시장 투자자들은 금리 상승에 베팅한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추진하는 이민자 제한 및 관세정책은 모두 물가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2026년까지 초반 2년 물가 상승률이 6%~9.3%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심화되면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하거나 아예 긴축 정책을 시행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국내 금리는 환율과 맞물려 있는 점도 향후 상승 가능성을 키우는 부분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원·달러 환율은 약 7개월 만에 1400원선을 넘어섰다. 미국이 관세율을 인상하면 전세계 교역을 위축시킬 위험이 크기에 안전자산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 것이다. 이에 한국은행은 당장 이번 달 28일에 열린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선택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한·미 금리차는 그만큼 커져 환율이 추가로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으로 국내 경기침체가 심화되면 보험사들이 입을 타격이 더 클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생활고로 보험을 해약하는 계약자들이 늘어나면 보험사들의 이익 규모가 줄어드는 동시에 해지리스크도 늘어나 자본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 이미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경기침체로 보험사가 지불하는 해약환급금 규모는 크게 늘었다. 과거 20조원 중반에 불과했던 생명보험사의 해약환급금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40조원대로 크게 늘었다. 올해도 3년 연속 40조원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재선이 금융시장에 어떤 효과를 미칠지 지켜봐야겠지만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보험사의 부담이 조금 덜어질 것"이라며 "다만 보험사들은 당장 시행되는 규제의 충격으로 인한 고민이 더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