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고령층 겨냥한 주택 사업 선보여
정부·지자체 공급 활성화 대책 내놔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우리나라가 내년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시니어 주택이 건설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 민간은 물론 공공까지 고령화를 겨냥한 주거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관련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니어 주택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건설업계 시니어 주택 사업 출사표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은평 시니어 레지던스’를 짓고 있다. 은평 시니어 레지던스는 지하 6층~지상 14층, 214가구(임대) 규모 노인복지주택으로 올해 안에 완공될 예정이다. 현대건설이 추진하는 시니어 주택 1호 사업이기도 하다. 아울러 경기 용인 수지구 고기동에서도 892가구 규모 ‘고기동 시니어 레지던스’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건설은 지난 6월 신한라이프케어와 ‘시니어 주거 모델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노인복지주택 사업 모델 개발과 노인복지주택 공모사업 추진을 위한 공동투자 및 개발 등에 협력한다는 계획이다. 또 노인복지주택과 관련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기로 했다. 신한라이프케어는 신한금융그룹 생명보험 계열사인 신한라이프 산하의 시니어 헬스케어 사업 전담 자회사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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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은 올해 주택건축사업본부 전략과제로 시니어 상품 개발을 꼽았다. 시니어 프리미엄 레지던스 등 노인복지주택 상품을 다각도로 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국내 대표 부동산 개발업체 MDM그룹과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 스위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곳은 경기 의왕시 의왕백운밸리에 자리한 호텔식 노인복지주택이다.

HDC현대산업개발도 시니어 하우징을 올해 역점 사업으로 정했다. 자체 사업인 4조5000억원 규모 서울 노원구 광운대역세권 개발사업지에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웰니스(건강관리) 레지던스’를 조성할 계획이다. 2개 동, 768가구 규모로 서울아산병원과 협업해 헬스케어 프로그램도 제공할 예정이다. 롯데건설은 서울 강서구 마곡 마이스 복합단지에 시니어 레지던스인 ‘VL르웨스트’를 짓고 있다. 지하 6층~지상 15층, 4개 동, 810가구 규모로 내년 10월 입주 예정이다. 이대서울대병원과 연계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롯데호텔이 전반적인 관리를 맡아 호텔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세계그룹 부동산 개발·공급회사인 신세계프라퍼티는 지난해 말 창립 10주년을 맞아 시니어 시장 공략을 공식 선포했다. 한미글로벌도 지난달 4월 신규 시니어 레지던스 브랜드 ‘심포니아’(SYMPONIA)를 공개하며 시니어 주택시장 진출을 알렸다. 한미글로벌 자회사인 한미글로벌디앤아이도 내년 3월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에 115가구 규모 도심형 시니어 주택 ‘위례 심포니아’를 공급할 예정이다. 1~2인 고령 세대를 위한 특화 평면으로 구성되며 간호사실, 헬스케어실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선다.

◇초고령 사회 진입, 수요 급증 예상

건설업계가 시니어 주택 사업 확장에 나선 건 고령화로 인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우리나라는 올해 말 이후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 인구는 지난해 말 993만명에서 올해 말 1051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고령 인구 비중은 19.2%에서 20.3%로 올라서게 된다. 전체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고령자라는 의미다. 고령화 속도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고령 인구 비중 14% 이상)에 진입한 건 2018년이다. 7년 만에 초고령 사회에 도달한 셈이다. 고령화 추세가 가파른 일본(10년)보다도 3년 앞선다.

반면 고령층을 위한 주거시설은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노인복지시설 현황’을 살펴보면 노인복지주택은 38개소로 입소정원은 1만명 규모로 추정된다. 65세 이상 인구의 0.11%만 입소가 가능한 수준이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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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단독가구가 늘고 있다는 점도 실버주택에 주목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고령자 중 노인 혼자 살거나 부부끼리만 같이 생활하는 가구의 비율은 78.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버산업 시장도 매년 덩치가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실버산업 시장 규모는 2020년 72조원에서 오는 2030년이면 168조원 규모로 133%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선 베이비부머 세대를 실버주택 시장의 주요 구매층으로 보고 있다. 기본 고령층과 달리 도심의 도시 서비스를 향유하면서 노후를 보내고자 하는 욕구가 증가함에 따라 양질의 주거 서비스를 찾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녀에 의존해 노후를 영위하던 기존 시니어와 달리 베이비부머 세대는 주거·취미·생활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발한 소비를 즐기는 수요층이다”며 “왕성한 활동과 충분한 소득을 바탕으로 양질의 주거 서비스 선호 현상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자 세대로 모두 진입하는 향후 5년 이내에 변화의 속도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시니어 주택 활성화 정책 쏟아져

정부도 고령층 수요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9일 고령층의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임대주택 '실버스테이' 도입을 연내 추진한다고 밝혔다.  실버스테이는 60세 이상을 위한 응급안전, 식사, 생활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20년 이상 거주 가능한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을 말한다. 고소득층이 주로 이용하는 실버타운과 저소득층 대상의 고령자복지주택에 이어 중산층을 위한 실버스테이를 만들어 고령층의 다양한 주거 수요를 맞추겠다는 의도다.

이번 발표는 지난 7월 내놓은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의 후속조치다. 정부는 각종 규제를 풀어 시니어 레지던스에 거주하는 비중을 지난해 기준 0.12%에서 오는 2035년까지 3%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실버스테이 도입과 함께 과거 폐지됐던 분양형 실버타운을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에서 허용하기로 했다. 분양형 실버타운은 과거 분양을 받은 뒤 고령층이 아닌 자녀 등 무자격자 소유 논란, 허위·과장광고 문제 등 논란이 많아 2015년 폐지됐다. 아울러 시니어 레지던스 조성을 위한 건설 자금에 주택도시기금 공공지원 민간임대 융자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2027년 첫 입주를 목표로 ‘어르신 안심주택’을 추진 중이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30∼85% 수준으로 도시 중심부 역세권에 조성된다. 지난달 26일에는 ‘폐교재산 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폐교를 노인복지주택으로 활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정부 기조에 건설업계에서도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규제 완화와 공급 대책이 시니어 주택 시장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며 “고령화 사회에 맞춘 주거 공급 확대로 건설사들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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