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과 공존하는 삶을 사는 4인의 이야기

A LIFE WITH SCENT
 향과 공존하는 삶

'수향만리^秀香萬里’, 브랜드 ‘수향^{@soohyangofficia}l’ 김수향 대표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향기로운 성어. “좋은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그 뜻처럼, 경리단길 골목에 문을 열었던 작은 향초 가게는 어느덧 손꼽히는 브랜드가 되어 세계시장에 진출했다. 어쩜 이름까지도 ‘수향^秀香’인 그녀를 만나 삶 속에 향기를 불러들이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들었다.

 언제부터 향기를 좋아했나요? 
원래 음악과 관련된 일을 했어요. 주류의 음악 말고, 독립적이고 개성 있는 음악을 좋아했죠. 당연히 패션도 독특한 매력을 지닌 스타일을 추구했고요. 자주 가던 의류 매장이 있었는데 제가 늘 매장 한쪽의 향수 코너를 들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좋아하는 그 브랜드만의 개성이 향기에서도 느껴졌거든요. 향기와 브랜드가 닮아 있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어요.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데, 향기를 통해 뭔가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요. 그렇게 점점 향기에 빠지게 되어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향기도 음악처럼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향기가 지닌 또 다른 힘은 뭘까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10여 년 동안 매장을 운영하며 더 확신하게 됐어요. 향기를 맡은 사람들은 다들 웃고 있거든요. 그런 경험 없으세요? 우연히 들른 공간에서 마음에 드는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이요. 향기를 전하는 일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별다른 행위를 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요. 그리고 이건 언어가 달라도 공통적으로 적용돼요. 

그 점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향기로 말할 땐 언어가 필요 없겠네요.
언어를 통해 향기에 대한 설명이 더해진다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언어가 닿기 전에 향기가 먼저 닿아요. 향을 맡는 건 본능이 하는 일이니까요. 맡는 순간 느끼잖아요. 이 향기가 나를 기쁘게 만든다는 걸요. 

향수를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보이질 않아요. 
제가 쓰는 향수들은 다 냉장고에 보관해요. 향수는 어둡고 시원한 곳에 보관하는 게 좋거든요.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실험해 보는 걸 좋아해서 향수가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냉장고가 음식 대신 향수로 가득 차 있어요. 

향기를 만드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요? 
누군가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대요. 심리학에서도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성격을 파악하기도 하고요. 전 이 부분을 향기에 적용해 보고 싶었어요. 내가 무슨 향기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 나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브랜드를 시작하며 33가지 향기 라인업을 구축한 이유도, 누구나 내가 좋아하는 향기를 하나쯤은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어요. 

향기로 공간을 연출하는 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아요. 공간에 향기를 들이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한 조언을 해주세요.
요즘 디퓨저는 워낙 많이들 사용하시잖아요. 병원, 헬스장, 식당… 없는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이젠 일종의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어떤 곳은 몇 년이 지나도 텅 빈 디퓨저가 한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기도 하고요(웃음). 일반적으로 디퓨저는 1~3달 안에 향이 다 날아가요. 적절한 사용 기간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향기로운 공간을 연출할 수 있어요. 

공간과 어울리는 향기를 찾는 일이 참 어려워요. 
요즘 향기 관련 숍이 정말 많아요. 여기저기 들러 하나하나 신중하게 테스트해 보세요. 유행하는 향기나 브랜드에 현혹되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아무리 유명한 제품이라도 내 취향과 맞지 않으면 무의미하니까요.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긴 시간 충분히 고민해 보세요. 

국제 공인 아로마 테라피스트이자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향’, 제주 유동룡미술관의 ‘이타미 준 시그니처 향’을 만든 작가. 한서형은 과거에 자신이 향에게서 받은 무언의 위로를 더 많은 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행복과 존경의 집’이라고 명칭한 보금자리에서 매일 허브를 만지며 향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누군가의 행복했던 기억도, 슬펐던 기억도 자신이 만든 향기 속에 담아내거나 혹은 공기 중에 날려버리길 바라며. 

어쩌다 향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나요?
복합적인 이유로 번아웃을 심하게 겪던 시기가 있었어요. 이를 해소하고자 긍정 심리학부터 요가, 명상 등을 공부하며 나름의 답을 찾아가고 있었죠. 그때 아로마 테라피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향을 맡자마자 기분이 순식간에 변하는 걸 경험하고 ‘이거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 이후로 자연스레 직접 조향한 제품까지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금동대향로 향’은 물론 제주 유동룡미술관의 ‘이타미 준 시그니처 향’도 개발하셨습니다. 작가님 향의 어떤 면이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찾게 만드는 걸까요?
오감 중에서도 시상을 거치지 않고 대뇌로 바로 연결되는 게 후각이 유일하대요. 냄새를 통해 과거의 어떤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프루스트 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입니다. 그러니 평소 향기 수업을 할 때도 그 시간 동안 향은 물론 좋은 시나 문장도 자주 읽어드리려고 해요. 언젠가 그 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요. 행복할 때 조향을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도 그 때문이에요. 향에는 만든 사람의 에너지가 담기거든요.

어떤 순간에 향수를 구매하면 좋을까요?
대학에 합격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을 때처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기분 좋은 일이 나에게 찾아온 날 새로운 향수를 하나 꼭 사보세요. 언젠가 힘든 일이 도래했을 때 그 냄새만으로도 행복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요. 

나에게 맞는 향을 찾는 방법이 있을까요?
우선 열린 마음으로 향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해요. 유명인이 뿌렸다거나 같은 불필요한 사전 정보는 최대한 배제하고요. 오직 ‘나는 어떤 향을 선호할까?’에만 집중하는 거죠. 또한 향수를 체험할 때는 반드시 시향지를 거치는 편이 좋습니다. 본통으로 맡는 것보다요. 향의 강도를 세게 높인다고 해서 그 향을 진정으로 잘 느낄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또 제품을 네다섯 가지 넘게 시향해 봤다면 잠시 밖으로 나가 후각을 초기화하는 편이 좋아요. 펠트지 또는 팔꿈치 안쪽의 살냄새를 맡는 것도 둔감해진 후각을 다시 깨우는 방법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시향하면 원하는 향을 찾기가 더 수월해질 거예요.

공간에 향을 연출하는 팁을 주신다면?
공간의 용도에 맞게 향을 배치해야겠죠. 이를테면 침실에는 잠을 잘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머리와 가까운 부분보다는 발끝 쪽에 향기 관련 제품을 놓는 게 좋아요.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환기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문을 열어두면 향이 날아갈까 걱정하지만, 오히려 바람길을 따라 냄새가 퍼지기 때문에 향을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거든요. 

일상적인 공간에 향을 쓸 때 주의할 부분이 있을까요?
매일 드나드는 공간에 향을 배치할 때는 처음 정한 용량을 끝까지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후각은 적응력이 뛰어나서,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냄새를 맡다 보면 향에 둔감해지기 쉽거든요. 나도 모르게 향 용량을 점차 늘리게 되면 공간에 처음 발을 들이는 이들에게는 “향이 너무 센데?”라는 말을 듣게 되기 일쑤죠. 

향을 레이어링하는 작가님만의 팁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주인공 향을 먼저 정한 뒤, 그날의 기분과 상태, 계절에 따라 조연이 되는 향을 조금씩 바꿔보세요. 뇌에도 좋은 자극이 가해지는 건 물론 향과도 지루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겁니다(웃음).

집에서도 아로마 테라피 효과를 누릴 방법이 있을까요?
마음에 평화가 필요할 때는 ‘베르가모트 에센셜 오일’을 발향한 후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이때 호흡은 깊고 느리고 편안하게 쉬어주면 더 좋겠죠.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들은 손수건이나 화장솜에 ‘라벤더 에센셜 오일’을 떨어트려 일차적으로 향을 맡고 조금 멀리 두고 잠들어 보세요. 이 과정을 행할 여유조차 없다면 샤워 시 라벤더 향이 첨가된 보디워시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손쉬운 방법입니다. 과중한 업무로 시달린다면 ‘라임 에센셜 오일’을 추천해요. 상큼한 향을 맡는 것만으로 기분이 전환되니깐요.

지금 계절에 어울리는 향을 추천해 주세요.
가을의 정취를 가득 느끼려는 분들께는 촉촉한 흙 내음이 나는 파촐리와 달큰한 뿌리 향을 담은 ‘베티베르’ 성분이 함유된 천연 아로마 오일을 권해 드려요.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에 현대적 미학을 더한 시각적 언어로 정평이 난 태오양 스튜디오의 양태오 디자이너. 그는 단순히 조형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공간의 본질을 늘 고민하는 사람이다. 공간이 자아내는 분위기, 감흥, 기억 등을 이끌어내기 위해 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와 향을 결합한 브랜드 시낭을 운영하고 가구 기반의 모던 코리안 리빙 브랜드 이스턴에디션에 프레그런스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그에게 향은 영감이자 창작, 사유, 세상을 향한 긍정의 메시지다. 

공간을 넘어 이스라이브러리, 시낭을 통해 무형의 향기까지 아울러 설계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향에 지금처럼 푹 빠지게 됐나요?
시각적인 요소만으로는 완전한 공간 경험을 제공하기 어렵다고 느껴왔습니다. 공간은 단순히 보이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공기, 소리, 향기까지 모든 감각이 어우러져야 진정한 몰입과 감동이 전달된다고 생각했어요. 그중에서도 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렬하게 감정을 이끌어내고 기억을 자극하는 요소였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공간 디자인뿐만 아니라 향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더 깊은 감각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향기는 사람의 마음과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게 되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그 순간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드니까요. 결국 향을 다루는 일은 무형의 감정을 설계하는 것과 같아요. 

디자인을 비롯해 다양한 작업을 하는 데 있어 향이 영감, 몰입 등에 영향을 주나요?
향은 디자인과 창작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향기는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요소를 넘어 감각을 자극하고 창의력을 확장시키는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향을 맡으면 감정이 떠오르고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몰입감이 극대화되기 때문이죠. 특히 작업할 때 저는 그 순간의 분위기와 목표에 맞는 향을 선택합니다. 예를 들어 디자인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는 상쾌하고 집중을 돕는 향이 필요하고, 감성적이거나 서정적인 작업을 할 때는 좀 더 따뜻하고 깊이 있는 향을 선택합니다. 각각의 향이 주는 에너지가 다르니까요. 또한 향은 창작자에게 특정한 장면이나 감정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켜 줍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아이디어가 보다 풍부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되죠. 결국 향은 단순한 배경 요소가 아니라, 창작의 중요한 촉매제이자 창의적인 흐름을 이끌어주는 동반자 같은 존재입니다.

향기를 통해 공간의 무드를 연출하고 싶을 때 참고할 점이 있다면요.
공간의 목적과 성격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예를 들어, 편안함과 휴식을 원하는 공간이라면 너무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차분한 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반면에 활기차고 에너지를 불어넣어야 하는 공간이라면 좀 더 상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향이 적합하겠죠. 또한 향의 강도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향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불쾌감을 줄 수 있고, 너무 약하면 그 공간의 무드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할 수 있어요. 사람들의 후각은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향의 강약을 조절해 적절한 밸런스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끝으로 향의 지속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공간의 사용 시간이 길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퍼지는 향을 선택하거나 주기적으로 은은하게 환기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프레그런스 제품을 만들 때 특별히 집중하는 부분이 있나요?
세상에 좋은 향은 이미 너무나 많죠. 그래서 그저 좋은 향을 만들기보다는 브랜드 스토리, 감정을 비롯한 더 깊은 메시지를 담는 데에 집중합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향과 스토리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삶을 개선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어떤 향기를 만들 때 단순히 그 향이 어떤 기분을 주는지를 넘어,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향은 감성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의 도구이기도 하니까요. 궁극에는 단순히 좋은 향을 넘어서 사용자에게 깊이 있는 경험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죠. 

이 가을에 잘 어울리는 향이 있다면요?
실내 공간에 문득 맺히는 그림자의 길이가 깊어지기 시작하고 쓸쓸한 감성을 자아내는 가을에는 이스턴에디션의 ‘Shadow’ 향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처마가 만들어내는 깊은 그림자와 그 아래의 공간을 서서히 거두어들이는 명상적인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이 향은 가을의 풍경과 닮아 있습니다. 

디자이너님만의 향을 레이어링하는 팁이 있을까요.
저는 2가지 향수를 직접 겹쳐 뿌리는 것보다 향이 나는 로션이나 오일을 사용한 후 위에 향수를 레이어링하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손목에 한 가지 향수를, 목에는 다른 향수를 뿌려서 다양한 조합을 실험해 보는 것도 추천해요. 핵심은 더 무거운 향을 먼저 뿌리고 가벼운 향을 그 위에 얹는 것입니다. 서로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죠.

공간, 그리고 공간 콘텐츠를 창작하는 회사 블루트^@blute.0423의 대표이자 ‘에어 퍼퓸 아티스트’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장지원 대표. 세상에 없던 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녀는 회화작품과 자연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향기로 표현한다. 직접 제작한 향이 은은하게 맴도는 장지원 대표의 집. 그곳에서 장지원 대표가 꿈꾸는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회화작품을 모티프로 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있지요?
블루트에서 하는 일이 크게 3가지인데요. 시각을 표현하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감정을 다루는 이모셔널 크래프트, 그리고 에어 시나리오가 있어요. 에어 시나리오는 향기에 대한 이야기예요. 대부분 향수를 설명하는 글에는 향조가 적혀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대신 그 향기가 떠오르는 장면을 설명하는 글을 쓰고, ‘에어 시나리오’라고 이름을 붙였죠. 개인적으로 예술 작품을 좋아하는데, 향이 비어 있는 곳에 향기를 채우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작품 감상에 몰입할 수 있는 향기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아티스트 에어 시나리오 컬렉션’을 제작하게 되었어요. 회화작품을 감상하며 들었던 제 생각과 감정을 향으로 표현합니다. 

‘공간 향’을 더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공간의 콘셉트에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향부터 좋지 않은 향까지 모두 수용 가능하다는 점이요. 예를 들어 축축한 습기가 가득한 물 향은 호와 불호가 나뉘죠. 하지만 어떤 전시 공간의 콘셉트가 비 오는 날 브루클린의 어둑한 지하차도이고, 그 전시에서 습기 가득하고 축축한 물의 향이 난다면 현실감이 더해져 흥미로울 거예요. 향과 공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는 것이죠. 

공간에 어울리는 향을 고르는 방법이 있을까요? 
분위기와 기분에 따라 향을 고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 만들고 싶은 분위기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산에 있고 싶다든가, 바다에 있고 싶다든가. 이런 콘셉트를 가지고 향기 연출을 한 뒤, 일을 하면 잘되죠. 또, 산뜻한 기분으로 일을 하고 싶은데 묵직한 머스크나 바닐라 같은 향을 뿌린다면 결이 맞지 않거든요. 공기가 무거워지면 방해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지요. 사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향조가 있어요. 먼저 그것을 파악한 뒤, 향을 고르는 것이 좋아요.

공간에 향을 연출하는 대표님만의 팁이 있나요? 
공간을 연출할 때는 조명과 음악, 그리고 향기, 이 3가지가 한 끗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셋의 조화가 정말 중요하죠. 하나라도 안 맞으면 분위기를 끌어올리지 못하거든요. 40대의 커플이 집에서 데이트를 할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면, 조명은 램프보다는 향초를, 음악은 재즈가, 그리고 관능적이고 섹시한 향이 조화로울 것 같네요. 

향을 레이어링할 때 필요한 조언을 주신다면요? 
사실 저는 레이어링을 좋아하지는 않아요(웃음). 그래도 팁을 드리자면, 룸 스프레이나 디퓨저만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향초를 피운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에요. 지속력과 발향력이 더 좋아져 풍성한 향기가 나거든요. 몸에 사용하는 향수의 경우 보디로션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는 것도 매력적이에요. 또, 향이 단순한 제품끼리 레이어링을 하는 것도 추천해요. 서로 조합해 향의 빈 층을 메우는 거죠. 

대표님이 생각하는 향이란 무엇인가요? 
눈빛. 사람을 만났을 때 눈을 바라보면 말하지 않아도 다 읽히잖아요. 진실한 사람인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향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취향과 성격을 숨길 수 없어요. 완고한 사람인지, 루즈한 사람인지, 로맨틱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설명 없이 ‘나’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죠. 

가을에 어울리는 향을 추천해 주세요. 
룸 스프레이는 식스티세컨즈의 ‘모스^Moss ’. 호불호가 거의 없는 편안하고 포근한 향이에요. 베르가모트, 진저, 제라늄 등 여러 향조가 어우러지는 풍성함이 매력적이죠. 향수는 프레데릭 말의 ‘로즈 앤 뀌흐^Rose&Cuir’를 추천해요. 흙냄새를 머금은 스모키한 장미꽃 향이에요. 비에 젖은 장미를 뽑았는데, 뿌리에 흙이 묻어 있는 듯한 느낌. 성숙하고 절제된 관능미가 느껴져요. 가을과 겨울에 스웨이드 재질의 옷을 입고 뿌리면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줄 것 같네요.

editor    장세현·권새봄·신문경
freelance editor    유승현
photographer    김잔듸·김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