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원의무화·전국사용촉진 강행 입법···거부권·재표결 등 소모적 갈등 수순 전망
지역경제 활성화 등 여야 정책효과 이견···“소비 진작, 수출·내수 연결고리 찾아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 지원 의무화와 전국 확대를 담은 지역화폐 활성화 법안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 예산권 침해, 지역 내 소비 효과 반감 등 부작용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대안으로 온누리상품권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다만, 수출 호조가 내수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소비 활성화의 근본 해법이란 진단과 함께 지역화폐나 온누리상품권 같은 지류형 상품권이 불법 거래나 부당이득에 취약할 수 있단 점은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역사랑상품권으로도 불리는 지역화폐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지역화폐에 대한 국가 재정지원을 의무화하고 전국적 사용을 촉진하는 내용의 법안(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강행 처리했다. 

법안에 반대하는 여당은 정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24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단 관측이 나온다. 거부권 행사가 현실화하면 야당은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등 지역화폐법안을 둘러싼 여야간 강대강 대치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지역화폐는 소비 진작 등 지역경제를 살린단 목적으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상품권이다. 보통 10% 안팎의 할인율이 적용되면 특정지역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지역화폐는 지난 2017년 처음 도입돼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엔 중앙정부 지원 규모가 1조2522억원까지 늘어났다. 다만, 현정부가 출범한 2022년부터는 예산 지원 규모를 축소하는 추세이다. 지난해 3522억원, 올해는 2500억원을 각각 지역화폐를 발행하는데 편성했다.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지역화폐에 대한 국가 예산 지원은 재정당국 재량에 달려있다. 현정부는 지난해 예산안부터 지역사랑상품권을 전액 삭감했으나, 국회 심의과정에서 야당 반발을 감안해 일부 증액하는 선에서 그간 접점을 찾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중앙정부 지원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재정당국은 정부 예산권을 침해한단 비판을 내놓는다. 지역화폐는 원래 지자체 자체 사업인데 중앙정부 재정 투입을 의무화하는 건 지방자치 취지에 어긋난단 것이다.

여당을 중심으로 법안이 지자체간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할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예산이 많은 지자체가 더 많이 발행할 수 있어 지역화폐 자체가 낙후지역, 지방소멸, 균형발전을 내세우는 법안 취지와 맞지 않는단 비판이다. 

여권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간 쿠폰은 소비자 선택을 거치는데 성공한 업종, 성공한 상점으로 좀 더 몰리게 돼 있다. 이에 매출 30억원 이하 제한, 하나로마트 사용 제한 등 궁색한 조치들이 나오고 있다. 지역화폐는 골목상권, 영세상권도 제대로 돕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안에 담긴 지역화폐의 전국적 사용 촉진이 과연 지역경제 활성화란 제도 취지에 도움이 되는지도 쟁점이다. 지역화폐 장점으로 거론되는 지역 내 소비 촉진, 자금의 타지역 유출 방지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단 진단이 나온다. 

지난 2020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는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할 경우 소비의 역외유출을 차단함으로써 발생하는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사라지고, 지역화폐 발행으로 인한 발행비용 증가, 소비자 후생 감소와 같은 비효율성만 남게 된다”고 분석했다. 기획재정부 측은 “소비 효과 등을 고려해 지역사랑 상품권 지원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소비는 구매력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고 구매력은 경기가 돌아가고 소득이 분배되면서 생기는 것”이라며 “지금 내수 문제는 소득이 부족한 게 원인이다. 수출이 잘되고 있지만, 이게 내수와 연결이 잘 안되고 있다. 수출 호조가 내수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찾는 게 중요한데 지역화폐는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역화폐의 대안으로 온누리상품권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내년 예산안에 관련 예산을 전년 대비 10% 늘린 5조5000억원을 편성했고, 추석 연휴를 앞두고 할인율을 높였으며 법 개정을 통해 사용처도 확대하는 추세다. 

다만, 지역화폐나 온누리상품권 모두 불법 거래나 부당이득 등의 우려가 제기되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거론된다. 학계 관계자는 “국가가 화폐를 발행하면 세금, 채권 등 자금운용에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 일부지역에서 지역화폐를 하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기본적으로 발행주체에 뭔가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구전을 취하려는 공공업자들이 움직이는 게 아니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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