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규·이석용, 금융사고 책임지고 물러날 가능성
이재근, ELS 사태 발생···"수습 잘해 연임" 관측도
정상혁·이승열, 추가임기 가능성 커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주요 시중은행이 차기 행장 선임 과정에 일제히 돌입했다. 은행들은 올해도 역대급 실적을 달성하고 있는 점은 각 은행의 수장들의 연임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각종 금융사고가 터진 만큼 이번 인사를 통해 시중은행 절반 이상이 교체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 행장들은 오는 12월 31일 일제히 임기가 만료된다. 각 시중은행은 차기 행장 선임을 위한 절차를 시작했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모범관행'은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부터 경영 승계 절차를 시작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인사의 최대 변수로는 ‘금융사고’가 꼽힌다. 여러 불미스러운 일 한 가운데 있는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에게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출을 내줘 문제가 됐다. 더구나 올해 6월엔 우리은행 한 영업점 직원이 회삿돈 100억원을 유용한 사고도 발생했다. 지난 2022년 700억원 횡령 사태가 터진지 불과 2년 만이다.
이에 은행권에선 조 행장이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가 터진 직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한다”라며 우리은행을 압박한 바 있다. 조 행장이 연임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지주 이사회가 조 행장을 최종 후보로 선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당장 이달에 열리는 국정감사서 조 행장이 출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집중되면 우리금융 이사회도 조 행장에게 쉽게 표를 주기 어려울 수 있다.
이석용 농협은행장도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임기를 마칠 확률이 높다. 109억원 규모의 부당대출과 53억원의 배임 사고가 모두 이석용 행장 재임 동안 일어났다. 이미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중대사고가 발생한 계열사는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물어 연임을 제한하겠다는 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 행장도 국감에 출석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중앙회장이 교체된 것 자체로 연임은 어렵단 관측도 많다. 새 중앙회장이 취임하면 이에 맞춰 농협은행장도 임기를 마치는 경우가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이성희 전 중앙회장이 지휘봉을 잡자 이대훈 전 농협은행장은 임기가 3개월 지난 시점에서 전격 사퇴했다. 특히 강 회장은 올해 초 취임한 이후 계열사에 대한 장악력을 더 키우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올해 3월 강 회장은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선임에 직접 개입하려 한 바 있다.
이재근 국민은행장도 금융사고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민은행이 대규모로 판매한 파생결합증권(ELS)에서 큰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투자자들에게 지급할 대규모 배상금을 비용으로 인식한 탓에 올해 실적이 크게 깎였다. 이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민은행은 사실상 실적 1위 자리를 타 은행에 빼앗겼다. 하지만 문제가 된 상품은 이재근 행장 취임 전 판매가 된 것이다. 또 이재근 행장은 사태 발생 직후 수습을 신속하게 했기에 연임 가능성이 크단 평가도 있다.
한편, 첫 2년 임기를 마친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무난하게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실적에서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지난해엔 신한은행이 시중은행 실적 3위로 내려앉았지만 올해 상반기에 1위에 오르는 반전을 만들었다. 순익 2위인 하나은행과 3000억원 차이로 앞서 있기에 올해 사실상 ‘리딩뱅크’ 타이틀을 되찾은 셈이다. 신한은행은 6년 전인 2018년에 실적 1위를 달성한 바 있다. 내부통제를 철저히 한 결과 별다른 금융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덕분이다.
이승열 하나은행장도 추가 임기를 보장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하나은행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냈단 평가를 받는다. 임기 첫해인 지난해 하나은행이 리딩뱅크 자리에 오른 것이다. 특히 작년 은행권에선 대규모 금융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모든 은행들이 대규모 일회성 비용 인식 없이 경상이익을 낸 상황에서 1등을 한 것이다. 특히 이 행장은 올해 초 지주 부회장 자리에 오를 정도로 그룹 내에서 신뢰도 두텁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도 은행 인사는 결국 ‘누가 더 못했냐’로 갈릴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