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입찰 낙찰 후 에너지 소비효율 낮은 제품 납품해 ‘3개월 입찰 제한’
LG전자 “납품 전문점의 잘못···제조 아닌 설치 책임 물으면 안 돼”
조달청 “낙찰자인 LG전자 관리 감독 의무···계약 적정한 이행 해칠 염려”

여의도 트윈타워 전경. / 사진=연합뉴스
여의도 LG트윈타워 전경.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LG전자가 조달청이 요청한 것보다 에너지 소비효율 등급이 낮은 냉난방기(에어컨)를 납품해 입찰 참가 제한 처분을 받은 것에 더해 뇌물 수사까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LG전자는 설치 납품을 의뢰한 전문점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입장이나, 조달청은 LG전자에 관리 감독의 의무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3일 LG전자가 조달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입찰참가자격제한 처분 취소 소송) 첫 변론기일에서 확인됐다.

LG전자는 2018~2022년 충북 지역 학교에 조달청이 요청한 것보다 에너지 소비효율 등급이 낮은 에어컨을 납품해 3개월의 입찰 제한 처분을 받았다. 조달청은 에너지 소비효율 1등급 에어컨을 발주했으나, LG전자는 3등급 이하 제품을 일부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납품요구 제품과 세부 품목이 다른 제품은 90개이며, 이는 전체의 0.02%에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사측 입장이다.

국가계약법은 부정당업자에게 2년 이내의 범위에서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달청은 국가계약법과 같은 법 시행령에 따라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2개월의 입찰 제한 처분을 내렸다. LG전자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며, 집행정지 가처분 인용으로 현재 입찰 제한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처분이 확정될 경우 LG전자는 해당 기간 공공 입찰에 참가할 수 없다.

소 제기 약 6개월 만에 열린 본안 첫 변론기일에서 LG전자 측은 ‘처분사유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설치 납품 전문점에 의뢰해 에어컨을 설치했는데 LG전자는 전문점의 행위를 알 수 없었으며, ‘제조’행위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닌 ‘설치’에서 발생한 문제임으로 국가계약법 조문상 구체적 내용에 관해 이 사안을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조달청 측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설치 대행사의 문제도 낙찰자인 LG전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설치 대행사이자 전문점 D사는 LG전자 제품만을 판매하는 곳이고, LG전자 직원이 배당돼 직접 감독을 하는 회사로서 별개의 회사라는 주장은 과하다고 반박했다. 관리 감독을 다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다.

에어컨 납품과정에서 뇌물 수수 등 유착이 있었다는 사실도 이날 처음 확인됐다. LG전자 측은 뇌물 사건 수사기록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기일 추정(어떠한 결과를 기다리기 위하여 다음 기일을 정하지 않는 것)을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제3자의 기록이면 사실상 기소돼 법원의 판단까지 나오지 않는 이상 쉽지 않겠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LG전자 측은 “저희가 전문점의 행위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피고(조달청)도 수요기관의 행위(뇌물수수)에 대해 고려할 부분이 있지 않느냐”며 거듭 기일 추정을 요구했다. 이에 조달청 측은 “원고 주장처럼 제3자들의 혐의라면 원고의 관리감독 책임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회의적이다”라며 반대했다.

재판부는 수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LG전자 측에 D사와의 계약 및 약정 내용, 일반적·실질적 관리 감독 방식 등을 제출하도록 했다. 현재 수사 진행 경과도 확인해 제출하도록 했다. LG전자 측 대리인은 “최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겠다”라고 답했다.

이 사건 다음기일은 12월13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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