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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l spaces for books - 파트1
그럴싸한 서재가 아니어도 좋다. 비어 있는 벽도, 낮고 좁은 평상 아래도, 책이 머물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읽기 좋은’ 자리가 될 테니.
나를 찾는 과정
메종드모닉 이윤지 대표의 침실 서재 PHOTOGRAPHER 김연제
러그 브랜드 메종드모닉을 운영하는 이윤지 대표는 사업과 육아 문제로 힘들 때마다 책을 읽으며 이겨냈다. 옷장처럼 문을 열어야 책을 꺼낼 수 있는 책장을 사용하다가 눈에 띄지 않으면 책을 잘 읽지 않게 되어 서재의 위치를 바꾸었다. 독특하게도 침실에 책장을 두었는데, 가장 편한 공간에 책을 두고 싶었다고. 선반을 벽에 고정하는 형태인 크립토나이트의 제품 ‘크로싱’을 선택해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답답한 느낌도 줄였다. 서재를 만들고 난 뒤 책을 쉽게 꺼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다고. 거실에도 책 선반을 두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했다. 이윤지 대표에게 책을 읽는 것은 “나를 찾는 과정”이다. 과거엔 앞만 보고 달려갔다면, 이제는 독서를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을 이해하며 나아가게 되었다. 얼마 전《김미경의 마흔 수업》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이윤지 대표. 나를 먼저 돌아보며 점검하는 과정은 삶에 반드시 필요하고, 책을 읽으며 사고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기에 독서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활자 중독자의 작은 아지트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의 저자, 영화평론가 김도훈의 책 방 PHOTOGRAPHER 김덕창
‘징그러울 정도’로 책이 많은 그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자마자 가장 큰 방을 ‘책 방’으로 정했다. 튀지 않는 디자인의 사무용 책장을 벽에 붙이고, 가진 책을 아무렇게나 쌓아 올렸다. 특별한 장식은 없지만 빼곡히 꽂혀 있는 책의 각기 다른 색채만으로도 어느 아트 포스터 부럽지 않은 인테리어가 완성됐다. 책의 무게를 못 이겨 휘어지기 시작한 책장조차 유명한 디자인 가구를 떠올리게 한다. 읽기 딱 좋은 조도의 조명과 편안한 라운지체어를 들이고 푹신한 카펫을 깐 공간. 이사 오기 전 가진 책의 절반을 처분했고, 책은 책 방에서 교양 있고 바른 자세로 읽겠다던 그의 다짐은 이사 후에도 계속 늘어난 책이 거실과 침실까지 침투하며 무의미해졌지만, 그의 고양이만은 여전히 책 방을 사랑하는 중.
삶의 이야기를 찾아
거실을 서재로 만든 ‘파란집’의 주인, 박서현 대표
서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말하는 박서현 씨. 과거 고등학교 과학 교사로 근무하다 여행 같은 삶을 꿈꾸며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그녀는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것을 즐긴다. 항상 책을 곁에 두고 싶어 가장 눈에 띄는 곳인 거실에 책장을 두었고, 자연스레 거실이 서재가 되었다. 거실 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한 책장은 집을 지으면서 직접 제작한 것. 책과 가장 어울리는 소재는 나무라 생각해 단단한 목재로 만들었고, 나무 자체의 색감이 드러나도록 마무리했다. 책이 그 자체로도 인테리어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책장의 소품을 최소화했다. 책장 앞에는 차분하고 묵직한 느낌의 나무 테이블과 의자를 두었는데, 테이블 위의 소품은 원색을 사용해 아이에게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박서현 씨의 서재는 집 안의 도서관이자 대화의 장소이다. 가족이 모여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는 삶으로 흘러들어 풍성한 일상을 자아낸다. 일리야 밀스타인의 작품처럼 책장 사이 창문이 있는 집을 짓고 싶다는 그녀에게 서재란 곧 행복이다.
책은 삶의 위로
<형사 박미옥>의 저자 박미옥의 책 방 PHOTOGRAPHER_김잔듸
한국 경찰 역사상 첫 강력계 여형사이자 강력반장을 지낸 박미옥 씨. 명예퇴직 후 여생을 보내기 위해 제주에 지은 그녀의 집은 곳곳이 책이다. 사촌오빠의 죽음을 경험하며 세상일에 시큰둥해진 때도 있었지만, 그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철학책으로부터 삶의 방향을 배우고 큰 위로를 얻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마당 한쪽에 서재 겸 책방을 만들게 된 이유다. 대부분 나무로 지어진 집에 걸맞게 책장 역시 모두 나무. 별다른 장식이 없어도 각기 다른 컬러와 디자인의 북 커버가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완성한 공간이다. 커다란 책장뿐 아니라 평상 아래, 벽 틈까지도 책이 빼곡히 자리한 이곳은 육지에서 온 지인과 여행객들이 고단하고 복잡한 마음을 털어두고 가길 바라는, 박미옥 반장만의 놀이터다.
책이 있는 평상에 앉아
갤러리 숍 오어즈 주인장 부부의 평상 책장 PHOTOGRAPHER_김덕창
옅은 분홍빛을 띠는 벽돌집. 구옥을 정성스레 고친 김나훔, 안성경 씨 부부의 집에는 볕 좋은 자리에 평상이 있고, 그 아래엔 책이 있다. 버터색으로 칠한 벽과 대비되는 짙은 색의 나왕목으로 완성한 평상. 햇빛이 인간의 행동과 기분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아는 부부는 큰 창으로 든 빛이 집 안으로 깊이 드는 오후 시간을 가장 좋아하고, 그럴 때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저 평상만을 설치하거나 문 달린 서랍장을 설치할 수도 있었지만, 시원하게 개방된 수납장을 택한 덕분에 둘만의 작은 서재가 완성될 수 있었다.
책으로 노는 집을 짓다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책놀이집’ PHOTOGRAPHER_Jung Song
2층의 거실과 식당 공간부터 3층의 안방을 지나 다락방 높이까지 서가로 가득 찬 집. 정릉 어느 골목길에 자리한 이 독특한 집의 정체는 에이디모베건축사사무소 이재혁 대표가 지어 올린 ‘책놀이집’이다. “책이 좀 많다”고 이야기하며 이재혁 대표에게 집 짓기를 의뢰한 건축주의 정체는, 한 대학의 문헌정보학과 교수. 남쪽에 우뚝 솟은 앞집이 전망을 모두 가리던 집. 그는 이 점을 이용해 남쪽에는 창문 대신 서가를 두고, 동쪽과 서쪽에 각기 다른 뷰를 감상할 수 있는 큰 창을 냈다. 책을 위한 집을 짓게 된 것을 계기로 건축주는 연구실의 책을 대거 집으로 옮겼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도 늘었다. ‘집은 재미와 놀이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크고 작은 집을 설계하는 이재혁 대표. 그에게 서재는 단순히 책만 가득 꽂아둔 곳이 아니다. 놀이와 충전이 공존하는 일종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거실은 사랑방의 역할을 하기엔 지나치게 개방되어 있어요. 거실이 가족과 함께하는 놀이와 충전의 공간이라면, 서재 같은 취미실은 가족 구성원이 독립적으로 놀이와 충전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만을 위한 작은 서재
유튜버 ‘콜미쑤’의 은밀한 서재 PHOTOGRAPHER_김잔듸
유독 책을 좋아하는 ‘콜미쑤’ 임수민, 채선기 씨 부부의 집엔 은밀한 서재가 있다. 오래된 구옥 계단 아래 위치한 작은 방. 보통의 경우라면 창고로 사용했을 법한 좁은 공간에 책장을 설치하고, 1인용 라운지체어와 조명을 둬 아늑한 서재가 탄생한 것. 벽에는 직접 촬영한 사진을 크고 작은 액자에 넣어 걸었는데, 덕분에 이곳은 세계 각지에서 구입한 책과 부부의 추억으로 가득 채워졌다. 여럿이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은 공간. ‘책과 나’ 단둘만이 존재할 수 있는 고독한 서재다.
잠들기 전까지 책과 함께
머리맡의 독서 공간 PHOTOGRAPHER_Lisa Cohen DESIGN_Kim Kneipp
호주 멜버른 교외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집. 부드러운 석회색 페인트, 수제 타일, 다채로운 색채의 패브릭과 행잉 플랜트로 장식한 이 아름다운 집의 서재는 바로 침실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밤새 긴 이야기에 몰입한 경험이 있을 터. 침대 머리맡에 나만의 작은 서재를 꾸며 잠들기 전까지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침대 양옆으로는 창문이 나 있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에도 좋다.
아름다운 사색의 공간
오래된 아파트에 만든 작은 서재 PHOTOGRAPHER_Simone Bossi DESIGN _studio duearchitetti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 창문 앞, 세월이 느껴지는 책상에 앉아 독서하는 삶. 꿈과 같은 삶이 이 집에서는 현실이 된다.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아파트의 꼭대기 층에 있는 우아한 집. 층고 높은 나무 천장과 큰 창문의 곡선이 집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거실과 연결된 작은 방 하나는 서재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양쪽 벽면에 모두 책장을 설치했음에도 나무 책장의 자연스러운 밝은 색감과 양옆으로 오픈된 형태가 개방감을 선사한다. 책장 사이에는 1인용 나무 책상과 의자를 배치해 독서나 작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과 어우러지는 서재의 모습. 영화 속 한 장면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모든 공간을 서재로
아르헨티나 애서가 가족의 책으로 가득한 고택
PHOTOGRAPHER_Javier Agustín Rojas DESIGN_OrdonezWenzke
곳곳에 가족이 좋아하는 책을 두어 모든 공간이 서재가 되는 집. 애서가들의 이상향이 아닐까. 아르헨티나의 비센테 로페즈에 위치한 오래된 주택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로망을 한가득 담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집을 리모델링했는데, 아치형 통로와 나무 바닥 등 기존의 집이 가지고 있던 독특하고 아름다운 특징은 모두 살리면서도 채광이 잘 들고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내부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클라이언트 가족이 모두 책과 예술을 좋아해 집 곳곳에 책을 두었다. 식당에는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책 수납장이 2개 있고, 한쪽 벽면에는 책 선반을 설치해 손쉽게 책을 꺼내 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계단 측면의 남은 공간에도 역시 책 선반을 두었다. 맨 위층 다락방은 모던한 화이트 톤으로 깔끔하게 디자인해 서재 겸 업무 공간으로 만들었다. 벽면에 2단 책장을 두어 책으로 장식했다. 천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editor <리빙센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