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될수록 더 좋아지는 것들이 있다. 서촌에 사는 이현우 씨는 오래된 집과 사물이 지닌 시간의 깊이를 사랑한다.

가끔 청소가 고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편히 오는 집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이현우 씨
가끔 청소가 고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편히 오는 집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이현우 씨

이어서살다

이사를 경험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새로운 집을 만날 때엔 우연과 운명, 운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어떻게 집을 찾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우연히, 갑자기, 때마침 등의 부사가 종종 쓰인다. 을지로에서 와인 바 ‘십분의일’을 운영하며 글을 쓰는 이현우 씨에게도 집 구하기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독립을 결심한 그는 6개월간 서촌 일대를 탐색했다. 을지로, 시청, 광화문, 서촌 등 역사가 깊은 서울 구도심의 바이브를 좋아하는데, 살 곳으로는 서촌이 항상 1순위였다. 사대문 안쪽 오래된 동네 특유의 정취가 있고 빛이 잘 들어오는 남향집이었으면 싶었지만 마음 같은 집이 나타나질 않았는데, 어느 날 서촌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사진작가 친구가 지금의 집을 추천했다. 아직 집이 안 나간 것 같은데, 좋아할 것 같으니 꼭 가보라고. 사진으로 이미 마음을 빼앗긴 그는 한정판 신발을 사러 가듯 아침부터 급히 부동산 사무소를 찾았다. 집은 예상대로 오래되었지만 깔끔하게 관리되어 매력적이었고, 당시 집주인이 신문사 기자라 글을 쓴다는 동질감이 들어 더 좋았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집의 바로 전 주인은 바로 《집을 쫓는 모험》의 저자 정성갑 작가였다. 그 책 속에 언급된 서촌의 빌라에 살게 된 것이며, 글을 쓰는 집주인들의 계보를 이어 나간다는 생각에 이르니 집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

거실과 서재의 테이블은 집의 분위기에 맞도록 맞춤 제작했다. 취미로 목공을 배웠던 이현우 씨는 와인 상자를 리폼하거나 합판을 가공해 작은 수납장들을 만들었다.
거실과 서재의 테이블은 집의 분위기에 맞도록 맞춤 제작했다. 취미로 목공을 배웠던 이현우 씨는 와인 상자를 리폼하거나 합판을 가공해 작은 수납장들을 만들었다.
침실에서 바라본 주방의 모습.
침실에서 바라본 주방의 모습.

 

아이가 살았던 집이라 천장에 야광별도 있고 키를 재던 흔적도 남아 있는데, 그런 것들을 안고 가면서 이 집과 동네를 오랫동안 즐기면서 지내고 싶어요.

 

혼자 살면서 화분을 마음껏 들이고 허브를 키우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옥상과 베란다에서 방울토마토와 허브를 기르는 중.
혼자 살면서 화분을 마음껏 들이고 허브를 키우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옥상과 베란다에서 방울토마토와 허브를 기르는 중.
거실 한쪽에서 연륜을 뽐내며 힘차게 작동하는 선풍기. 
거실 한쪽에서 연륜을 뽐내며 힘차게 작동하는 선풍기. 

기억을 쌓아가는 시간들

집은 주인을 닮는다는 말처럼, 을지로에서 8년간 와인 바를 운영해 온 이현우 씨의 세심함은 그의 인테리어에서도 드러난다. “손님들을 잘 챙기고 싶은 환대 본능이 있어요. 할머니처럼 이것저것 잘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요. 그래서 거실에 소파 대신 큰 테이블을 두었죠. 손님이 셋만 와도 소파 자리가 불편할 것 같았거든요. 한동안은 마치 새로 가게를 연 사장님처럼, 내일은 또 누가 올까 하며 청소를 하곤 했네요.” 이현우 씨는 손님을 배려해 가구를 들이고 오래된 물건들로 공간을 꾸며 그의 직업적 성향과 일관된 취향을 반영했다. 방마다 큰 가구들을 배치한 다음 작은 수납장은 직접 만들거나 중고 거래를 했다. 혼자 살기엔 공간이 넉넉하지만, 선반과 수납장은 물건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해서다. 초중학교 시절의 교과서, 받았던 편지, 여행지에서 가져온 작은 종이류 등 차마 버리지 못한 것들을 모두 ‘빈티지’라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집을 대대적으로 고치기보다는 기존의 서사를 이어가기로 택한 그는, 쓰임이 다한 물건들과도 오랜 인연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 집에서 이루고픈 목표 중 하나는 평생의 인연을 얻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정이 많은 집주인을 품은 이 집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쓰일까?

아이들을 위한 작은 욕조가 설치된 욕실.
아이들을 위한 작은 욕조가 설치된 욕실.
페인트로 마감한 벽이 은은하게 온기를 품고 있다. 서재 한쪽에 자리한 책장에는 20년이 넘은 교과서부터 필기 노트로 빼곡하다.
페인트로 마감한 벽이 은은하게 온기를 품고 있다. 서재 한쪽에 자리한 책장에는 20년이 넘은 교과서부터 필기 노트로 빼곡하다.

CREDIT INFO

freelance editor     김의미
photographer    이수연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