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금리를 인상하니 이제는 이자 장사라고 한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정책을 두고 은행권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혼란스러운 건 은행권만이 아니다. 내 집 마련을 꿈꾸던 실수요자들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가계대출 억제 정책으로 금리가 오른 것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만기와 한도까지 줄어들면서 자금 마련 계획이 어그러질 위기에 처한 탓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은 대환대출 인프라를 개시하며 은행권의 금리 인하 경쟁을 유도했다. 시장 경쟁 촉진을 통해 국민들의 대출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에 따라 인터넷은행을 주축으로 주담대 금리 인하 움직임이 나타났고 금융소비자들의 편익이 증대되는 듯했다.
그러나 대출 증가세가 가팔라지자 금융당국은 대환대출을 비롯해 은행권의 가계대출 취급 전반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주요 은행들은 앞다퉈 주담대 금리를 올리며 대출 속도 조절에 나섰다. 금리 인하 경쟁을 주도했던 인터넷은행들은 가계부채 확대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인터넷은행에서 취급한 대출의 상당 부분은 대환대출로 대출 전체 총량을 늘리는 것이 아님에도 금융당국은 이에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으려면 일관적인 기조를 유지해야 하지만 금융당국은 또 한 번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당초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 시점을 돌연 9월로 연기한 것이다. 규제 시점 연기는 대출 수요를 부추겼다. 지금이 아니면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결국 가계대출 증가세는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갈지자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은행권에 가계대출 억제를 주문하던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의 금리 인상 움직임을 질타하며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은행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가계대출 속도 조절에 동참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지만 돌아온 것은 금융당국의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권에서는 금리 인상을 넘어 대출 만기와 한도까지 축소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내 집 마련을 계획 중이던 실수요자들은 대출 절벽을 맞닥뜨리게 된 셈이다.
대환대출 인프라를 개시해 금리 인하 경쟁을 유도했던 것은 금융당국이다. DSR 규제 시점을 미뤄 ‘대출 막차’ 심리를 자극한 것도 금융당국이다. 대출 확대의 원인이 분명함에도 엉뚱한 곳을 탓하니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이제라도 오판을 거두고 시장에 일관적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정책의 노선을 명확히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