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시기 가계부채 대응에 문제”
“경기위축 방지보단 집값부양책 치중”
“금리·재정 등 정책 여력 떨어진 상태”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최근 국가와 가계 빚 폭증에 따른 내수 부진은 정부가 디레버리징 방향을 잘못 잡은 데 있단 지적이 나온다. 고금리 시기 민간부채를 잡는 방향으로 정부 지출을 늘렸어야 했지만, 어정쩡한 태도로 가계빚은 여전하고 거시경제 전반의 위축을 막을 정책 여력만 축소시켰단 분석이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가와 가계가 진 빚이 크게 늘었다. 정부 당국 추산 올해 6월말 기준 전 분기 대비 국가(중앙정부)부채는 30조4000억원 늘어난 1145조9000억원, 가계부채는 13조8000억원 증가한 1896조2000억원이다. 가계·국가 빚을 합치면 3042조1000억원으로 통계작성 이후 사상 최대치다.
부채는 최근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분기 늘어난 가계·국가빚은 44조2000억원으로 직전분기 증가폭(20조원)의 2배가 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절정이던 2021년 3분기(63조원) 이후 2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이다.
◇ 주택거래량 회복에 가계부채도 증가
국가부채 증가는 경기 부진 영향으로 2년째 세수 부족이 계속되는 가운데 현정부 들어 꾸준히 진행된 감세정책 영향에 따른 결과란 지적이다. 가계부채 증가는 최근 주택거래량 회복과 함께 관련 대출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주택담보대출은 직전분기 대비 16조원 늘어나며 가계부채 증가를 주도했다. 지난달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8조3234억원 급증하며 3년 4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부채 증가는 다음세대 부담 요인인 반면 가계부채는 당장의 문제”라며 “경기 부진과 고금리가 누적된 현상으로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대출이 늘어나면서 국내 수요를 억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부동산이 떨어지거나 경기 위축으로 자영업자가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금리 장기화 속 가계·국가 빚 증가로 이자부담이 늘어나면서 내수침체 우려가 커졌다. 여기에 내수 회복 카드로 꼽히는 기준금리 인하는 최근 집값 불안으로 꺼내기 힘든 카드가 됐다.
정부가 정책 방향타를 잘못잡은 결과란 지적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고금리 시기엔 가계·기업 부채를 줄이는 디레버리징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그간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주요국의 경우 가계빚 문제를 해소하면서 가계부채 규모가 줄어드는 대신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흐름을 보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금리 시기 디레버리징을 충분히 하지 못했고, 오히려 가계부채를 조장하는 정책을 펴고 있단 분석이다.
◇ 2분기 소매판매액지수 전년대비 2.9% 감소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금리 시기 디레버리징이 충분히 안 된 상태에서 국가부채가 늘어났다”며 “부채 조정 과정에서 경제 위축을 막기 위해 국가부채가 늘어났다기보단 지출을 줄이면서 감세를 많이 하는 과정에서 늘어났다”고 진단했다.
민간 부채를 조정해 가계·기업의 재무구조를 건전화 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린 이후 경제가 활성화하면 다시 재정을 건전화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가계부채 조정이 제대로 안 된 시점에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자금을 대규모로 풀면서 가계빚이 다시 늘어나게 됐다. 민간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정부 재무구조 건전화를 앞세우면서 거시경제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단 지적이다.
하 교수는 “부동산만 오르고 민간은 원리금 상환 부담에 소비를 못 늘리는 상황”이라며 “민간도 어렵고 정부도 긴축 등 거시 안정화 정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거시경제가 위축되는 흐름”이라고 봤다.
내수 등 거시경제 위축은 통계지표로도 잡힌다. 2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동분기 대비 2.9% 감소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4.5%) 이후 15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이다. 2분기 국내총생산은 민간소비가 0.2%, 설비투자가 2.1% 각각 감소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달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내수 부진을 이유로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했다.
내수 회복에 사용할 정책 여력은 떨어진 상태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오르면서 통화당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자꾸 뒤로 밀리고 있고, 국가채무가 늘어나면서 정부 주도의 내수 부양책도 제한적인 상황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도 총지출 증가율을 최대한 억제한 건전재정 기조가 두드러진다.
강 교수는 “국가부채는 정부가 지출을 자제하고 정말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가계부채는 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저리 대출에서 벗어나야 하고 이를 견디지 못하는 경우는 사회복지 정책으로 막아주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사회가 이자율을 내리는데 우리만 대출이자를 높이는 건 어떻게 보면 금융권이 돈을 더 많이 벌게해 주는 정책”이라며 “대출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사실 피해야 할 방향이다. 민간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하는 쪽으로 유도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