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간부사원 취업규칙 변경하며 과반노조 동의 안 받아
파기환송심,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 여부 쟁점
원고 측, 문서제출명령신청에 재판부 결정 없자 기피 신청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간부사원들에게만 해당되는 취업규칙을 바꿀 때에도 전체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필요한지를 놓고 벌어진 현대자동차 취업규칙 재판이 수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 여부가 마지막 쟁점으로 남은 상황에서, 원고 측이 재판부의 소송 진행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대차 간부사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파기환송심(서울고법 민사1부 심리) 절차는 지난해 11월 첫 변론기일이 진행된 뒤 추가 변론기일이 열리지 않고 있다. 첫 기일 후 세 차례 변론기일이 변경됐고, 현재는 재판부 기피 절차가 진행 중이다.
원고인 간부사원 측의 재판부 기피 신청은 피고인 현대차 측 준비서면에 포함된 ‘노동조합 공문’에서 비롯됐다. 이 공문에는 간부사원 취업규칙 신설에 대해 노동조합이 유감을 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회사는 노동조합의 유감이 담긴 해당 공문이 이 사건 쟁점인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원고 측은 해당 공문이 일부만 발췌됐고, 회사가 집단적 동의를 구하기 위해 진지한 설득과 노력을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공문 접수일’ 또한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재판부에 ‘접수일이 포함된 노동조합 공문 전체’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다.
2004년도 임금교섭 타결일인 2004년 7월1일부터 간부사원취업규칙이 노동부 지방사무소에 신고된 2004년 8월18일까지 47일 동안 회사와 노동조합 사이 간부사원 취업규칙에 대한 어떠한 교섭도 존재하지 않으며, 노동조합의 공문 접수일과 간부사원 취업규칙 신고일이 근접하다면 ‘사용자가 취업규칙 변경을 위해 근로자를 진지하게 설득·노력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게 된다는 게 원고 측 설명이다.
하지만 재판부인 원고 측의 신청에 별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이에 원고 측이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기피권을 행사한 것이다.
원고 선정당사자인 현승건 전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연구일반직지회 지회장은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 여부를 확인하라는 게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였고, 동의권 남용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문서제출명령 신청임에도 재판부는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라며 기피 신청 배경을 설명했다. 해당 기피 신청은 최근 같은 법원 민사15부에서 기각됐으며, 현재 항고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는 노동조합의 우려가 담긴 공문을 준비서면에 제출한 회사 측에 대해서도 “회사는 2004년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작성하면서 노동조합이 비조합원(간부사원)에 대해 대표권이 없어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면서 “(그러나)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이 부각이 된 현 시점에서는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비조합원(간부사원)에게만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등 일관성 없이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 현대차 간부사원 취업규칙이 뭐길래
이번 사건은 현대차가 2003년 9월1일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고, 그로부터 1년여 뒤 기존 취업규칙과 별도로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간부사원 취업규칙에는 종전 취업규칙과는 달리 월 개근자에게 1일씩 부여하던 월차휴가제도를 폐지하고, 총 인정일수에 상한이 없던 연차휴가에 25일의 상한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대차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에 대해 간부사원 중 89%의 동의를 받았으나, 과반 노조인 현대차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이후 간부사원인 원고들은 “취업규칙상 연월차휴가 관련 규정은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으로서 무효다”라며 미지급 연월차휴가수당 등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간부사원들은 1심에서 패소했으나 2심에서는 일부 승소했다. 2심은 이 사건 취업규칙은 불이익변경에 해당하고, 간부사원이 아닌 승진 가능성이 있는 근로자 전체가 동의의 주체에 해당하므로 그 승진 가능성이 있는 근로자집단의 동의를 받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나아가 2심은 간부사원 취업규칙의 연월차휴가 부분은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갖추지 못해 무효라고도 했다.
현대차는 상고했지만 의미있는 반전을 만들어 내진 못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5월 “(원심은) 종전 판례의 태도에 따라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판단하였을 뿐이다”라며 “노동조합의 부동의가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판단하지 않은 원심판결에는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의 잘못이 있다”라고 사건을 되돌려 보냈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 이후 불리해진 전세를 뒤집기 위해 대리인단을 대거 보강했다. 대법원에서 사건을 맡았던 법무법인 지평 외에 법무법인 율촌, 태평양, 화우 소속 변호사들을 추가로 선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