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세대출에 DSR 적용 검토
은행권 조건부 전세대출 잇따라 중단
강남 등 현금 부자 지역엔 ‘효과 미미’
월세·반전세 가속화 우려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전세자금대출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임차인과 집주인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가계부채를 줄이고 무분별한 ‘갭투자’(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하는 방식)를 차단하려는 의도이지만 이 과정에서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을 줄이는 방안으로 DSR 적용 범위 확대와 은행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위험가중치 상향 등을 논의하고 있다. 다음 달 1일부터 DSR 2단계 시행으로 차주의 주담대 한도가 다소 줄어들지만 시장에선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DSR 적용 범위를 현재 40%에서 35% 낮추는 등 대출 한도 자체를 낮추고 전세대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 압박에 시중은행들은 벌써 전세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가장 먼저 신한은행이 나섰다. 지난 25일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했다. 조건부 전세대출이란 임대인(매수자) 소유권 이전, 선순위채권 말소 또는 감액, 주택 처분 등의 조건들이 붙은 대출이다. 대출 실행일에 임대인(매수자)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조건의 전세대출, 선순위채권 말소 또는 감액 조건이 붙는 전세대출 등의 취급을 모조리 중단했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 조치에 들어가면서 다른 시중은행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세대출 제한에 나선 건 갭투자를 막기 위해서다. 조건부 전세대출로 인해 그동안 주택을 매수하면서 계약일에 임차인을 들여 전세대출금을 실행해 아파트 잔금을 치르는 등의 갭투자가 불가능해지게 된다. 정부는 전세금의 80~90% 수준의 대출이 손쉽게 나오다 보니 서울 핵심지에 갭투자를 하고 전세대출을 받아 생활하는 투자자도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시장에선 전세대출 규제가 집값의 상승 흐름을 반전시키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남3구나 마용성 등 현재 상승세가 강한 지역은 현금 부자가 즐비한 만큼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강남 등 상승 흐름이 강한 지역은 현금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며 “오히려 수요는 많은데 전세 매물을 감춰버리는 효과를 가지고 와서 전세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이나 금관구(금천·관악·구로) 등 대출 비중이 많은 지역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DSR 규제가 도입되면 기존에 대출을 받기 어려웠던 금융 취약계층이 더욱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고정적인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낮은 계층은 대출이 더욱 어려워져 불법 사금융으로 몰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무주택자 등 일부 계층을 예외로 두거나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대출 규제가 전세의 월세화 또는 반전세화 현상을 가속화하는 등 서민 실수요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30평대 서울 아파트 전세 보증금 약 7억원을 월세로 전환하면 280만원에 달한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은행권에서 대출 금리가 인상돼 이자 부담이 증가한 상황에서 집주인들은 월세를 선호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세입자 입장에선 전세대출이 막혀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