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시범, 데이케어센터 설치 갈등
압구정3구역, 3100억 공공보행교 반대
노원구 재건축, 공공기여율 35%에 술렁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정비사업장 곳곳이 공공기여(기부채납)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분위기다. 기부채납 시설을 두고 서울시와 갈등을 빚으면서 사업이 지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자체의 과도한 기부채납 요구가 정비사업 활성화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 시범’은 ‘노치원’(노인과 유치원 합성어)으로 불리는 데이케어센터를 기부채납으로 들이는 문제로 서울시와 수개월째 갈등을 빚고 있다. 데이케어센터는 경증 치매 등 노인들을 위한 치료시설이다. 서울시는 공익성을 위해 해당 시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외부인의 출입과 단지 가치 하락 등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2022년 11월 이 단지를 최고 65층, 2500가구로 재건축하는 신속통합기획안을 확정했다. 용적률 최대 400%, 최고 층수 65층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요구했다. 소유주들의 반대가 이어지면서 사업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이 데이케어센터를 문화시설로 변경하는 내용의 방안을 제출했지만 서울시가 최근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반영해 보완하라고 결정하면서 사업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강남구 압구정3구역 정비사업장도 기부채납 문제로 서울시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압구정3구역 정비계획안에는 성수동 서울숲과 압구정을 잇는 공공보행교가 포함됐다. 공공보행교 기부채납비용은 310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일부 조합원은 기부채납 비용뿐 아니라 단지 인근 보행교를 오가는 유동인구 때문에 주거환경이 나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올해 11월 입주를 앞둔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도 공공기여 문제로 강동구와 갈등을 드러냈다. 당초 단지 내 조성되는 문화사회복지시설에 ‘강동구 지역자활센터’가 이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비입주자들은 해당 시설에 전과자나 정신이상자 등이 오갈 수 있어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에 나섰다. 강동구는 입주자들 집단 반발이 이어지자 결국 계획을 철회했다. 지역자활센터는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이 자립할 수 있도록 상담·교육·취업·창업 등을 지원하는 공공시설이다.
서울 노원구 일대 재건축 사업은 시작 전부터 공공기여 문제로 시끄럽다. 서울시와 노원구는 최근 ‘상계·중계·하계동 일대 택지개발지구 지구단위계획 변경안’에 대한 열람공고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상계·중계·하계동 역세권 일대 상계주공·현대우성·중계주공 등 11개 단지가 기존 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이 가능해진다. 이들 단지는 일반상업지역이 섞인 복합정비구역으로서 용적률이 최고 400%로 완화되고, 최고 높이 180m(약 60층) 규모로 탈바꿈이 가능하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에 탄력이 붙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용적률을 높이는 만큼 공공기여율도 높아져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최고 400%의 용적률을 받기 위해선 전체 연면적의 35%를 기부채납 해야 된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통상 공공에 반납하는 비율이 20%만 돼도 높다고 보는 만큼 35% 수준에 부합하는 공공기여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에선 과도한 기부채납 요구로 인해 주택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대중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정비사업이 탄력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과도한 기부채납이 꼽힌다”며 “용적률을 올려도 기부채납 비중이 높을 경우 사업성이 떨어지다 보니 조합들이 사업 추진을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사비 급등으로 인해 사업성 우려가 커진 점도 조합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인이다”며 “인센티브를 받아야만 사업성이 확보되지만 기부채납이 인센티브의 전제 조건이 된 상황에서 이 같은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부도 기부채납으로 인한 정비사업 지연에 우려를 나타내는 분위기다. 국토부는 지난 14일 서울시청에서 ‘기초지자체 인·허가 협의회’를 열고 서울시 25개 자치구에 과도한 기부채납 요구 등으로 인해 재개발·재건축이 지연되지 않도록 인·허가 속도를 높여줄 것을 직접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