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곡·내곡·우면 등 강남권 유력
이명박 정부 시절 이후 12년 만
인기 지역 물량 공급 한계
해제부터 입주까지 5~10년 소요
“효과 없고 투기꾼 배만 불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꺼냈지만 시장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통상 그린벨트 해제 이후 입주까지 10년 넘게 걸리는 데다 공급 물량이 적어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그린벨트 땅 일부 소유주들의 배만 불릴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서울과 그 인접 지역의 그린벨트를 풀어 신규 공공택지를 조성해 8만호(올해 5만·내년 3만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올 초 ‘1·10 대책’에서 서울 그린벨트를 풀어 수도권 신규 택지 2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당초 계획보다 4배 증가한 물량이다. 그린벨트 해제 물량의 30%는 전세 등 임대로 공급된다.

서울시 내 그린벨트 규모는 149.13㎢로 서울 전체 면적의 25%에 해당한다. 지역별로 서초구가 23.88㎢로 가장 넓고 강서구 18.92㎢, 노원구 15.91㎢, 은평구 15.21㎢ 등이다. 서울 시내에서 보존 가치가 낮아(3등급 이하) 해제가 가능한 그린벨트는 29.0㎢로 추정된다.

/ 그래픽=시사저널e

특히 강남구 세곡동, 서초구 내곡·우면동 등 강남권 그린벨트가 해제 1순위 지역으로 꼽힌다. 이들 지역은 농지 중심으로 구성돼 그린벨트 중 보존가치가 낮은 곳(3등급 이하)이다. 강남과 분당 사이에 있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밖에 수어역 인근 수서차량기지와 강서구 김포공항 일대 등도 거론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울에 그린벨트가 훼손된 곳(비닐하우스 등이 설치되면서 더 이상 녹지로 보기 어려운 곳)은 주로 서초·강남 등지에 있다”며 “서울의 그린벨트 해제는 강북은 산이므로 결국 강남권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서울 그린벨트를 풀기로 한 건 수요가 몰리는 서울 도심에 주택을 공급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권과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에서 시작한 집값 급등세는 현재 서울 전역과 수도권 일부 지역까지 번지고 있다. 정부는 신규 택지를 발표하는 오는 11월까지 서울 그린벨트 전역과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 지역 등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주택 공급 등을 목적으로 서울 그린벨트를 지속해서 풀어왔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을 짓기 위해 3.47㎢를 해제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2009∼2012년 보금자리주택을 짓기 위해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 일대 5㎢(경기도 포함 시 34㎢)를 해제했다. 강남구 세곡동 6500가구, 서초구 우면동 3300가구, 내곡동 4600가구, 수서동 4300가구, 강동구 고덕·강일 1만1800가구 등으로 공급됐다. 문재인 정부 때도 3300여가구를 공급하기 위해 일부 지역을 해제하기도 했다.

다만 시장에선 그린벨트 해제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강남권 그린벨트를 풀어도 1만가구 이상 가구 공급이 어려운 데다 한꺼번에 해제하기 어려워 공급물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주택을 공급하기까지 빨라야 5년, 길면 10년 이상이 걸려 지금 상승하고 있는 아파트값을 잡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 그린벨트 해제는 물량 얼마나 공급되고 이를 통해 시장 안정 효과를 얻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며 “강북은 산이기 때문에 강남에 공급이 될 텐데 물량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정도 물량으로 강남 집값을 안정화시키고 서울 전역으로 파급효과가 이어지긴 쉽지 않을 것이다”며 “그렇다면 굳이 서울의 그린벨트를 해제할 필요성은 낮아진다”고 말했다.

그린벨트에 들어선 새 아파트가 집값을 잡기는커녕 향후 주변 단지들과 함께 오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시각도 제기된다. 실제 과거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 그린벨트를 풀어 공급했던 보금자리주택들의 매매가격이 분양가의 4배 가까이 상승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세곡2지구 1단지로 공급된 강남구 수서동 ‘강남데시앙포레’(2014년 8월 입주)'는 전용면적 84㎡ 실거래가격이 17억원 안팎이다. 이 단지 같은 면적은 2013년 4억3088만~4억4975만원에 분양됐다. 같은 기간 내곡1지구에 공급된 서초구 내곡동 ‘서초더샵포레’는 전용 84㎡ 분양가가 4억3582만~4억6365만원이었다. 이 단지 같은 면적은 실거래가가 14억원선에 형성돼 있다.

그린벨트 내 일부 소유주들의 배만 불리거나 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그린벨트 해제 기대감에 땅을 매수해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는 등 일부러 녹지를 훼손한 일부 땅 주인들에게 막대한 시세차익이 돌아갈 수 있다”며 “3기 신도시 택지 개발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논란이 있었던 만큼 강남·서초 그린벨트에 위치한 땅 주인에 대한 보다 면밀한 현황 조사를 진행한 뒤에 정책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