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지난달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6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주택금융공사의 정책모기지론 양도분과 주택도시기금의 정책대출을 포함한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115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말 대비 6조원 증가한 규모로 지난 5월과 동일한 증가 폭이며 올해 들어 가장 많이 늘어난 액수다.
가계대출 폭증의 중심에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자리 잡고 있다. 가계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담대 잔액은 지난 6월 기준 876조9000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6조3000억원 늘어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담대는 올해 들어 6개월 연속 증가세다.
연초부터 금융당국은 가계 빚 억제를 위해 은행권을 상대로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지시해 왔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시중은행들은 주담대 금리를 앞다퉈 인상했지만 가계대출 증가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책이 가계대출 규제 기조와 엇박자를 내면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규제를 예정보다 2개월 미룬 9월 1일에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DSR이 차주가 가진 전체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소득으로 나눠 산출했다면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차주의 미래 금리 상승 폭까지 고려해 더 강화된 한도로 적용되는 대출 규제다.
스트레스 DSR 시행 시점이 연기되면서 규제 강화 전에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은행 창구로 몰렸다. 그간 은행권에 가계대출 관리를 압박했던 금융당국이 정작 규제 적용을 미루면서 오히려 대출 수요를 부채질한 셈이다.
대출 규제 강화 시점을 연기한 데 이어 정책대출 공급을 확대한 점도 가계대출 증가세에 불을 지폈다. 신생아 특례대출이 그 예시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대출 신청일 기준으로 2년 이내에 출산·입양한 무주택 가구나 1주택 가구(대환대출)에 연 1~3%대 저리로 최대 5억원까지 주택 구매자금과 전세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다.
정부는 신생아 특례대출의 부부 합산 소득 기준을 당초 1억3000만원으로 뒀다가 지난 4월 소득 기준을 3분기 중 2억원으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상향이 이뤄지지도 않았으나 정부는 소득 기준을 한 차례 더 완화해 2025년부터 2027년 사이 출산한 가구에 대해 부부 합산 소득 기준을 2억5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추가로 내놨다.
낮아진 대출 문턱은 가계부채 증가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담대와 전세자금 대출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택 구입 및 전세 자금 대출을 지원하는 정책대출 확대가 가계대출 증가세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하며 연일 은행권을 압박하더라도 다른 정책이 대출 수요를 부추기면 가계부채 억제 효과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시점에 정부와 금융당국의 ‘갈지자 행보’는 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더 이상의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정책 추진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세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