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참사 계기로 급발진 주목
제조사 입증 책임 부과 등 움직임
국회서도 관련 법안 추진 본격화
“급발진은 허구” 비판 의견 변수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7번출구 인근 사고 현장에 국화와 추모글이 놓여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7번출구 인근 사고 현장에 국화와 추모글이 놓여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계기로 차량 급발진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페달 블랙박스를 활성화하는 방안, 급발진 입증책임을 제조사에 부과하는 방안 등 제도 보완 필요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급발진이 과학적인지를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논란이 예상된다. 급발진이 허구적 상상에 불과하단 강도 높은 비판 또한 나오는 상황이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청 인근에서 운전사가 도로를 역주행하면서 9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을 놓고 경찰 등 당국 수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사고 운전자는 차량 급발진을 주장한다. 이에 차량 급발진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커지면서 관련 대책 마련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선,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신고하더라도 입증과정이 까다롭고 입증 책임이 제조사 측에 없기 때문에 소비자 구제를 받기 어려운 상황을 개선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급발진연구회 회장인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현재 제조물 책임법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소비자, 운전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밝혀야 하는 구조로 돼 있는데 균형을 잡아야 한다”며 “법개정 등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정책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제작사가 급발진을 방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단 지적도 나온다. 최근 토요타, 테슬라 등이 셧다운 프로그램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 처럼 차에 소프트웨어적 이상이 생겼을 때 전원부터 완전히 꺼버리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단 것이다. 

페달 블랙박스 도입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 교수는 “사고 이후 나의 결백을 입증하는게 페달 블랙박스이다. 발을 찍으면 운전자 잘못인지 차의 결함인지 100% 증거로 쓸 수 있다”며 “블랙박스 전체를 바꾸면 비용이 많이 들지만, 페달 채널에 추가로 장착하는 식으로 하면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페달 블랙박스를 정부 차원에서 의무화하는 건 수입차의 경우 FTA 저촉 가능성 등이 있어 적절하지 않고, 페달 블랙박스 장착시 보험료 할인 등의 방식으로 촉진할 필요가 있단 설명이다. 

국회도 움직이고 있다. 페달 블랙박스의 경우 전날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이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자동차 제작, 판매자 등이 차종, 용도, 승차인원 등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페달 블랙박스를 장착할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위반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도 담았다.

입증책임을 제조사에 부과하는 법안도 추진 움직임이 감지된다. 21대 국회 당시 차량 급발진 의심사고가 발생할 경우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의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으나 입법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하지만, 최근 시청역 참사를 계기로 제조물 책임법 개정 청원이 성립요건을 달성했고, 법안 또한 조만간 다시 나올 것으로 보인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제조물에 의한 손해는 제조사가 결함없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급발진 관련 논의가 본격화하면 진통 또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급발진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허구에 불과한 주장이란 반론이 제기된다. 실제 국내 급발진 의심 신고 중 실제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교통안전공단 추산 2017년부터 접수된 급발진 신고 236건 중 실제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0건으로 나타났다. 

한 자동차 학계 인사는 “급발진은 증명되지 않았다. 일종의 유령 현상이고 역사학계 환단고기 같은 주장”이라며 “과학이 뭔지, 공학이 뭔지 모르는 주장이 계속 나오면 사회가 혼란해질 뿐”이라고 비판했다.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페달 블랙박스가 불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차량 설계할 때 감안이 되지 않았던 디바이스를 붙이는 건 좋지 않다”며 “차량 전장에 손을 대는 것인데 제작자 설계 범위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손을 대면 차량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EDR은 신뢰할 수 있는 장치고 변조가 안된다. EDR에 기록된 데이터는 일반적으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없고, 전용 디코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EDR 이외의 방법으로 뭔가를 입증을 하라는 건 모순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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