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노동위원회 구제 판정 불복 소송
‘간부사원 취업규칙’ 항의했던 근로자에 대한 징계 부당 판정
간부사원만 역량 향상 교육···당사자들은 “퇴출 프로그램 운용”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현대자동차가 부당정직 등 부당노동행위 여부를 다퉜던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부당정직을 당한 당사자는 과거 현대차 내부에서 일반직 지회를 결성해 활동했던 간부사원으로, 법원은 회사가 ‘이중징계’를 했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김준영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현대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정직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 사건은 현승건 전 현대차 일반직 지회장에 대한 회사의 2021년 5월 정직 2개월 처분의 적법성이 논란이 된 사안이다. 현씨는 현대차가 2004년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에만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제정한 이후 내부에서 부당함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현대차는 2016년~2018년 현씨가 저조한 인사평가를 받았다며 2019년 PIP(역량 향상 프로그램) 교육 대상자로 선정하고, 2020년 3월에는 ‘근무태도 및 근무성적 불량, 상사 업무지시 불이행’이라는 사유로 정직 2개월의 징계(1차 징계)까지 내렸다. 현대차는 또 2020년 현씨를 PIP 교육 대상자로 재선정하고는, 2021년 5월 ‘근무태도 및 근무성적 불량’이라는 사유로 정직 2개월의 징계(2차 징계)를 재차 의결했다.
현씨는 2차 징계가 부당정직 및 불이익 취급의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하면서 구제신청을 했고, 중노위는 1, 2차 징계가 사유가 중첩돼 ‘이중징계’라며 2차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법원도 중노위 판정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2차 정직의 징계사유에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참가인(현씨)에 대한 인사평가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이 사건 정직(2차 징계) 중 일부 징계사유는 이중징계에 해당하고, 나머지 부분(2019년도 인사평가 결과 및 2020년 PIP 평가 결과의 저조)만으로 이 사건 정직이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징계 타당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원고(현대차)의 주장처럼 PIP 평가 결과만을 징계사유로 삼은 것이라면, PIP 점수의 저조만으로 참가인(현씨)을 ‘근무태도나 근무성적이 불량하고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는 자’로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서 “이중징계 사유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만으로 정직이 정당한지 살펴보면, PIP평가에는 참가인의 근무태도나 근무성적과 ‘무관한 평가점수’가 포함되어 있고, 2019년 인사평가 결과를 함께 참작하더라도 참가인을 ‘근무태도나 근무성적이 불량하고 개선의 여지가 없는 자’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꼬집었다.
◇ 노조 보호 못 받는 ‘간부’만 PIP 교육···“사실상 퇴출 프로그램”
현대차는 2009년부터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만을 대상으로 PIP 교육을 실시했다. 서울 근교 연수원에서 2주 동안 합숙을 하면서 하루 종일 경영학 이론과 관련한 수업을 듣는 내용이다. 직전 3년간 누적 근무성적이 하위 2% 미만에 해당하는 간부사원들이 대상이다.
회사는 업무능력을 향상하고 현업에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입장이지만, 정작 교육을 받는 당사자들은 해고 등 사실상 퇴출 프로그램처럼 운용돼 왔다고 주장해 왔다. 한번 ‘찍히면’ 블랙리스트처럼 반복적으로 PIP 교육 대상자가 되고, 스스로 퇴사를 결정하도록 모멸감 등을 준다는 것이다. 회사가 PIP 교육을 악용해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간부사원들을 쫓아내는 정리해고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씨는 시사저널e와의 통화에서 “PIP 교육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어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시행됐고 이후 징계로 이어졌는데, 이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균등한 처우 규정에 어긋난다”면서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그 어디에도 교육 후 징계라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음에도 이러한 불이익한 근로조건에 대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은 근로기준법 제94조 위반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현씨는 현대차 ‘간부사원 취업규칙’이 2중 취업규칙이라고 지적하면서 수년간 회사와 소송중이다. 회사가 이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며 제기한 민사소송은 대법원을 거쳐 현재 파기환송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