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로 수백 명에게 610여억 원 편취 혐의
공범들도 징역 6~15년, 두 딸은 징역 2년 ‘실형’
“사회초년생 등 경제적으로 취약한 피해자들에게 막대한 손해”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서울 강서·관악구 일대에서 임차인 수백명에게 전세보증금 600억여 원을 가로챈 ‘세 모녀 전세 사기’ 주범 김아무개씨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김씨의 범죄로 사회적 피해가 심각하다면서도 사기죄의 법정형이 최대 10년이고, 경합범 가중 1.5배에 따라 최대 15년까지 선고할 수밖에 없는 법률상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12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이같이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분양 대행업체 실운영자, 분양팀장 등에게도 징역 6년에서 징역 15년을 각각 선고했다. 주범 김씨에게 명의를 빌려준 두 딸에 대해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각각 선고하되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최 판사는 “이 사건 전세 사기 범행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끼치고 피해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주택 임대차 거래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다”면서 “피고인은 자신이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400여 채 빌라 등을 자기 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고 취득한 후 임차인에게 임대차 보증금을 받을 것을 기대하거나 부동산 시가가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아래 방만하게 사업을 운영했다. 이로써 수 많은 피해자들이 임대차 보증금을 적시에 반환받지 못했고”라고 지적했다.
이어 “빌라들의 숫자, 피해액 합계 등이 다른 전세 사기 사건과 비교해 그 규모가 상당하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자신의 사기 범행을 부인하며 손해를 변제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피해자들이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에서 임대차 보증금을 일부 돌려받았으나 이는 손해가 공사에 전가된 것일 뿐 피고인 스스로 노력해 피해자들의 손해를 회복한 것이 아님이 명백해 유리한 양형 요소로 선택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김씨에게 선고된 징역 15년은 법정 최고형이다. 사기죄의 법정형은 징역 10년 이하이고, 2건 이상의 사기를 저질렀다면 ‘경합범 가중’ 규정에 따라 법정 최고형에서 최대 2분의 1까지 형을 더할 수 있다. 최 판사는 “피고인의 경우 현행법상 사기죄의 법정형(10년)에 경합범 가중을 한 처단형의 최고형이 징역 15년이기에 입법상 한계에 따라 이와 같이 선고할 수밖에 없음을 명확히 한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피고인들에 대해서도 “분양대행 수수료에만 눈이 멀어 사회초년생이거나 입찰 경험이 별로 없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이 사건 사기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나아가 거액의 분양대행 수수료를 자신들의 명의 통장을 받게 될 경우 부과될 종합소득세 등을 회피하고자 수십 개의 지인 명의 통장을 빌려 그 통장으로 대행 수수료를 받아 탈세까지 하려는 치밀함을 보였다”라고 꼬집었다.
이날 재판부가 밝힌 범죄액은 주범 김씨 614억 원(피해자 271명), 송아무개씨 344억원(피해자 149명), 양아무개씨 225억원(피해자 107명), 정아무개씨 84억원(피해자 37명), 박아무개씨 52억원(피해자 20명) 등이다.
◇ 사기 고의 및 기망행위, 범죄의 공모 모두 인정
재판과정에서 김씨 등은 단순 과실이 있었을 뿐 사기에 고의 등이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 같은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기의 고의 및 기망행위와 관련 ▲자신이 소유한 빌라들이 수백 채에 이르러 현실적으로 혼자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별도로 임대 사업을 관리해 주는 직원을 두지 않은 점 ▲매입 주택이 많아질수록 임대차 보증금 반환의 부담 역시 커짐에도 장차 임대차 보증금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아래 향후 보증금이 일괄 하락하거나 후속 임차인을 구하지 못할 경우의 상황에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점 ▲부동산 거래 경험이 많은 피고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점 등이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과 같이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거의 동일한 시점에 수백 채에 이르는 부동산을 매입하는 경우 임대인이 별도의 자본 투자 없이 임대차계약 기간 종료 시점에 수백 채의 부동산에 관한 임대차 보증금 반환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임으로,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위험이 통상적인 경우와 비교해 크게 증가하게 될 것임은 경험칙상 분명하다”면서 “피고인들이 피해자들에게 무자본 갭투자 방식 및 임대차 보증금 일부를 리베이트로 나눠 갖는 사정 등을 말하지 않은 것은 기망에 해당해 이 사건에서 기망행위가 인정된다”라고 판단했다.
피고인들의 공모 여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 사건 사기 범행의 성립과 완성에 피고인들이 각자 역할을 함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면서 “피고인들 모두에게 공동가공의 의사와 기능적 행위지배를 인정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형법상 공동정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요건으로 ‘공동가공의 의사’와 객관적 요건으로 ‘그 공동의사에 기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한 범죄를 실행했을 것이 필요하다.
김 씨는 지난해 7월 이미 세입자 85명에게 183억원 상당의 보증금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날 재판은 추가로 확인된 범죄 사실에 대한 후속 기소 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