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기업대출 반복 시행해 100억원 빼돌려
"영업 현장에선 아직 내부통제 허술해" 지적
기업대출 유용 어려워···"기업 명의 도용했을듯"

서울 명동 우리은행 본점 / 사진=우리은행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우리은행에서 2년 만에 또 대규모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우리은행의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아직도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우리은행에 조사팀을 파견하고 이번 사건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경상남도 김해 지점에서 100억원 상당의 고객 대출금이 횡령된 사실을 파악하고 조사에 돌입했다. 지점 직원 A씨는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대출 신청서와 입금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대출금을 빼돌린 것이다. A씨가 횡령한 대출금은 기업여신에 해당한다. 조작된 서류를 이용해 3~6개월 만기의 기업 단기여신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금은 대부분 10억원 미만이다.  

2년 만에 대규모 횡령 사건이 또 발생한 것이다. 지난 2021년 우리은행 본점의 한 직원은 2012년부터 6년간 총 707억원의 자금을 빼돌린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당시 우리은행의 허술한 내부통제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 문제로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우리은행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자체 내부통제 시스템에 의해 적발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달 우리은행 본점 여신감리부는 모니터링을 통해 대출 과정에서의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A씨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한편 담당 팀장에게 거래 명세를 전달해 검증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이 조사에 들어가자 A씨는 경찰에 자수했다. 

하지만 은행권에선 영업의 최전선인 지점 단위에선 아직도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기업대출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데도 지점장, 팀장 등 책임자들이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반응이다. 더구나 각 지점에 준법감시 담당자와 내부통제 담당자도 각각 한 명씩 배치했지만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 점도 문제란 의견이다. 

더구나 직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리’가 지점 내 검증 체계를 피해 범행을 저지른 점도 기이한 일이란 평가다. 영업 현장에서 횡령이 걸러지지 않다 보니 피해액도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은행은 A씨가 최초로 사건을 저지른 후 약 5개월 만에 알아낸 것으로 파악된다. A씨는 빼돌린 금액으로 해외 선물과 가상자산에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까지 확인된 손실 규모는 약 60억원 수준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아무리 대출 금액이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기업여신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데도 지점장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문제”라며 “지점장이나 팀장 등 책임자들이 직원 A씨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등 기강 해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범행의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기업대출의 경우 은행의 전산 시스템에 등록된 법인의 명의로 된 계좌에 대출금을 넣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돈이 채무자의 계좌 이외의 곳으로 가기가 불가능하다. 이에 A씨가 특정 법인의 명의를 도용해 계좌를 만든 다음 대출금을 유용했을 것이란 예상이 유력한 상황이다. A씨가 유령 회사를 세워 자금을 빼돌렸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직원이 마음먹고 범행을 저지르면 걸러내기 어렵다고 하지만, 기업대출을 유용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A씨가 아무리 치밀한 범행 수법을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지점장 및 관련 담당자들은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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