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기내 면세품 중개업체 활용한 ‘편법 증여’ 논란
1·2심 모두 편법 증여는 인정···2심서 23억 가산세는 취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 사진=한진그룹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 사진=한진그룹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총수일가에 부과된 140억 원의 세금의 적정성을 가리는 행정소송이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조 회장 등을 대한항공 기내 면세품 납품 중개업체들의 '실질적 사업자'로 볼 수 있는지, 아니라면 조세 포탈을 목적으로 한 적극적 은닉 행위가 인정되는지가 쟁점으로 분석된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세무당국은 한진 총수일가가 제기한 증여세 등 부과처분취소 청구가 2심에서 일부 인용되자 지난 4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조 회장 등 역시 이튿날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이 소송은 지난 2018년 세무당국이 한진그룹 총수일가에 증여세 및 종합소득세 140억 원을 부과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사안이다.

대한항공은 2003~2018년 중개업체 3곳을 통해 항공 물품을 납품받았는데, 세무당국은 이 중개업체들의 실질적 사업자인 고(故) 조양호 회장(2019년 사망)이 가족을 공동사업자로 등록한 다음, 회사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편법 증여’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조 회장 등은 일가 전체가 실질 사업자에 해당한다며 조양호 회장만을 실질 사업자임을 전제로 한 과세처분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일가 전체가 공동사업자이기 때문에 중개업체로부터 지급받은 가지급금은 조양호 회장으로부터 받은 ‘증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종합소득세 역시 원고들의 명의로 이미 신고·납부가 돼 포탈한 소득세가 없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세무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조원태 회장 등이 사업 내용을 모르고 있었고, 사실상 사업에 관여한 바 없다며 중개업체들의 실질적 사업자는 조양호 회장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사업체의 이익이 조양호 회장으로부터 원고들에게 이전된 것은 처음부터 조세 회피를 위한 수단에 불과해 재산 이전의 실질은 직접적인 증여를 한 것과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종합소득세 미신고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원고들의 증여세를 포탈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원고들이 중개업체들의 실제 사업자인 것과 같은 외관을 만들고 조 회장을 대신해 종합소득세를 부담하게 할 의도가 있었음이 분명하고 그로 인해 조 회장은 종합소득세를, 원고들은 증여세를 각각 포탈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2심 법원도 실질적 사업자를 조양호 회장으로 보고 과세처분의 전제가 옳다고 봤다. 그러나 1심이 ‘적극적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높은 가산세율을 적용하고 부과 제척기간(과세기간)을 늘린 것은 위법하다고 봤다. 1심과 달리 적극적 은닉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세무당국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기간은 통상적으로 5년이지만, 납세자가 부정행위 등으로 세금을 내지 않으면 10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

재판부는 “망인과 원고들은 조세 포탈의 목적에 따라 적극적으로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망인에 대한 종합소득세에는 10년의 장기 부과 제척기간이 아닌 5년의 부과 제척기간이 적용돼야 하고, 망인에 대한 종합소득세와 원고들에 대한 증여세는 부당 무신고 가산세(40%)가 아닌 일반 무신고 가산세(20%)를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과된 증여세와 종합소득세 총 140억여원 중 약 23억5000만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상고심에서도 중개업체들의 실질적 사업자는 누구인지, 종합소득세 미신고 행위에 원고들의 적극적 은닉행위가 인정되는지를 놓고 양측이 법리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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