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규제 풀어 거래 활성화 기대
야당 ‘세금 완화’ 기조 나타내자 발맞춰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개편 작업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완화에도 시동을 걸었다. 두 세금을 완화해 거래 활성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세금 완화에 줄곧 반대해 온 야당의 기조가 바뀌며 ‘부자 감세’ 프레임에 균열이 생긴 점도 속도를 내는 배경이다.
10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2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배제를 소득세법에 반영해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다음 달 ‘2025 세법 개정안’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그동안 ‘여소야대’ 상황 속에서 법 개정 없이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가능한 ‘양도세 중과 한시 배제’라는 임시방편을 택해 왔다.
현행 소득세법에선 보유 기간이 2년 이내거나 다주택자가 보유한 부동산을 양도할 때 중과세율을 적용한다. 기본세율 6~45%에 2주택자는 20% 포인트, 3주택자 이상은 30% 포인트를 더 매긴다. 다만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행령을 개정해 양도세 중과를 내년 5월 9일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그 이후는 2주택자가 한 채를 매도할 경우 최대 70%의 양도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정부가 양도세 손질에 나선 건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부동산시장 정책에 대한 시장 참여자 정책 대응 행태 분석 및 평가방안 연구’에 따르면 다주택자 양도세율이 1% 포인트 오를 때 아파트 매매가격은 0.206% 증가하고, 거래량은 6.87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8년 1월~2022년 12월 수도권 71개 시·군·구 아파트 매매가를 분석한 결과다. 국토연구원 관계자는 “매물이 감소하는 주택가격 상승 후반기에 양도세를 더 강화하면 매도를 더욱 위축시키거나 매도 가격을 상승시켜 ‘집값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양도세 중과 강화는 많은 부작용을 양산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자녀를 분가시키거나 일부에선 위장 이혼까지 감행하며 1가구 1주택자 적용을 받아 세금을 회피했다. 자녀와 같이 살면서도 주택을 구입한 뒤 독립 가구로 분리해 양도세 중과를 회피하고, 주택을 자녀에게 증여해 세율이 훨씬 낮은 증여세만 내는 방식을 썼다. 2030 신혼부부 중에선 각기 1주택을 구입한 뒤 양도세 감면 요건 확보를 위해 사실혼임에도 혼인 신고를 미루는 사례가 등장했다.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완화도 추진한다. 현재 무주택자가 집 한 채를 살 땐 기본세율(1~3%)을 적용해 취득세를 부과한다. 반면 2주택, 3주택 이상 구매 시 세율은 각각 8%, 12%로 높다. 시장에선 높은 취득세율이 부동산 거래 침체를 유발하고 서민 주거안정을 해친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초 경제정책 방향에서 3주택자 취득세율을 8%에서 4%를 낮추고, 조정지역 2주택자는 중과(8%)를 폐지해 기본세율(1~3%)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담은 지방세법 개정안은 야당 반대로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폐기됐다.
정부가 양도·취득세 손질에 나선 건 부동산 세금 완화를 두고 야당이 계속 주장해 온 ‘부자 감세’ 프레임에 균열이 생기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종부세 폐지론에 불을 지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실거주 1주택자 종부세 폐지를 시사했고, 고민정 최고의원과 장경태 최고위원도 종부세제를 총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부세 완화에 줄곧 반대해 오던 기조에서 완전히 돌아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기조를 반영해 올해 종부세 자체를 폐지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상속세 완화에도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주택 가격 상승으로 상속세 대상이 된 중산층에 대해 상속세 일괄공제액 기준 상향 등을 통해 세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중산층 세부담 경감을 위한 상속세법 개정에 대해 “합리적이고 필요한 개정이라면 열어놓고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시장에선 다주택자의 양도·취득세 중과가 완화되면 주택 거래가 정상화돼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종부세 조정이 시장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내려면 양도세와 취득세 등 다주택자 규제 완화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며 “야당이 세금 완화에 대한 마음을 연 만큼 종부세에 이어 양도·취득세 관련 논의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야당 내부에 아직 ‘부자감세’ 기조가 남아 있어 폐지보다는 완화하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2년 차인 지난해 1월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양도·종부세 중과 등 이른바 ‘다주택자 규제 3종 세트’를 한꺼번에 풀겠다고 약속했다. 이 중 현실화한 건 종부세 중과 완화가 유일하다. 여야 합의로 지난해부터 2주택자 중과(1.2~6.0%)를 폐지하고 일반세율(0.5~2.7%)을 적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