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군 운전자 대상으로 할 정책, ‘고령자’ 굳이 강조할 필요 있었는지 의문
노인운전자 사고 증가 통계, 노인 인구 증가 등 변수 정확히 고려해야···단순 통계로 보면 20대 운전자도 사고율 높아
고령 운전자 재심사 제도 이미 운영 중···해당 제도 보완 필요 있다면 ‘나이’ 아닌 ‘운전 능력’ 자체에 방점 찍어야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65세 이상은 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한데요. 말이 되나요?”

한 식사 자리서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세상에 별 이야기가 다 있다고 생각했다. 못 믿는 눈치에 “진짜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제서야 눈이 커졌다.

정확히 말하면 ‘고속도로 운전금지’는 아니었다. 정부가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야간 및 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는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고령자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단 진화에 나섰다.

교통안전 침해를 우려로 면허를 제한하거나 규제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지만 ‘고령자’를 특정해 언급한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고령자 운전면허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나이가 많으면 신체 및 인지능력이 저하돼 있다’는 판단이다. 그렇다면 나이와 무관하게 인지능력이 저하됐거나 신체적으로 안전운전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면허를 제한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해도 자연스럽게 고령자들이 제한대상에 많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굳이 ‘고령자’를 부각하지 않아도 이치대로 될 일인데 고령자를 타깃으로 하듯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고령자 운전 제한 명분으로 가끔 등장하는 통계들도 빈약하다. 65세 이상 운전자의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이유 중 하나로 ‘고령자 사고가 많아지고 있다’는 통계가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해당 통계만으로 고령자가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우리 인구 자체가 고령화되고 있고 건강상태가 좋아져 노인들의 사회활동이 늘고 있다. 고령운전자 사고가 증가한 이유가 고령 운전자 자체가 많아져서는 아닌지, 또 고령자 사고들이 인지 저하 때문이었는지 그냥 원래 부주의한 성격이기 때문인지 등등 의문이 남는다. 노인운전 사고가 늘었다고 노인이 더 위험하다고 하는 건 마치 서울에 인구 자체가 많아서 다른 도시보다 편의점 이용자 수가 많은 것인데 ‘서울 편의점 이용자수가 많은 걸 보니 서울사람들이 편의점을 특히 좋아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편의점’을 약국, 병원, 카센터 등등 다른 것들로 대체해도 서울이 제일 많고 그건 특이한 일이 아니다.

덧붙여 단순히 통계로 말하면 ‘그럼 20대 운전자는?’이라는 말도 나올 수 있다. 20대 운전자의 사고율이 월등히 높다는 정부 통계도 있고, 보험회사에서도 20대 어린 운전자의 경우 이미 공식적으로 보험료를 비싸게 받는다. 렌터카 사고, 음주운전도 20대 비율이 많다고 한다. 통계대로 정책을 한다면 오히려 해당 문제가 더 시급해 보인다. 그렇지만 20대 운전자 사고를 막기 위한 제한 정책 같은 것은 들어본 적이 없고 또 마냥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모든 20대 운전자가 위험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 통계로 전체 집단에 영향을 주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해외사례 때문에 고령자 고속도로 면허제한 정책을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다들 쉽게 해외사례를 드는데 해외엔 참 많은 사례가 있다. 중학생때부터 승용차를 몰고 다니기도 하고 또 나이와 상관없이 처음에 면허를 따면 안전을 위해 당분간은 면허소지자를 조수석에 동승하게 하던지 별도의 초보인증 스티커(개별구입 스티커가 아닌 정부발급 공식 스티커)를 붙이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 그걸 따라하진 않는다. 물론 ‘해외에는 이렇게 한다’는 것이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겠지만 절대적 이유로 내세울 일은 아니다.

심지어 그 해외에서 하고 있다는 고령자 면허 갱신 및 재심사 제도와 유사한 것들은 우리도 이미 하고 있다. 65∼69세 나이로 버스 및 택시 운전을 하는 경우 3년마다, 70세 이상은 1년마다 의무적으로 검사를 하게 돼 있다. 고령자들을 마음대로 운전하고 다니게끔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고령자일수록 인지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렇기에 더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하고 있는 고령자 재심사 제도가 부실하다면 그에 대해 손질하는 것도 맞다. 다만 이 같은 제도의 목표가 운전능력에 문제가 있는 노인들을 제한하는 것이 아닌 노인운전자 자체를 무조건 줄이는게 목적인 것처럼 비춰진다면 곤란하다. ‘65세 이상인지’가 아닌 ‘운전할 수 있는 인지능력이 떨어졌는지’에 방점을 찍고 정책을 발표하고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뜩이나 고령화시대에 2024년의 65세를 과거의 65세와 똑같이 생각하고 대우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노인과 관련한 정책 대상은 노인이 아니라 사실상 전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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