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빌라 경매 건수 18년 만에 최다
전세사기 물건 풀리고 유찰 반복
HUG 대항력 포기 물건도 속출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경매시장에 서울 빌라 물건이 갈수록 쌓이고 있다. 빌라 경매 건수는 2006년 이후 18년 만에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전세사기 관련 물건이 경매 시장에 본격 풀린 데다 반복된 유찰로 인해 물건이 쌓인 것으로 풀이된다. 

1일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진행된 서울 빌라 경매 건수는 1494건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1456건보다 늘었다. 이는 18년 전 같은 기간인 2006년 5월 1475건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며 직전 최고치는 2006년 1월 1600건이다.

서울의 빌라 경매 건수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월평균 600~800건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 1월 1290건, 2월 1182건, 3월 148건, 4월 1456건 등으로 올해 들어 계속 1000건을 웃돌고 있다. 2022년부터 시작된 전세사기 관련 물건이 경매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데다 빌라 비선호 현상 등으로 유찰이 반복되면서 경매 건수가 쌓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기간 낙찰률(진행 건수 대비 낙찰 건수 비율)은 20%로 전달(15%)보다 다소 개선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항력(임차인이 임대차계약상의 권리를 제3자에게 주장할 수 있는 힘)을 포기한 빌라 경매가 늘어난 영향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 대책위원회와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5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기자회견’을 하며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 대책위원회와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5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기자회견’을 하며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HUG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에게 집주인 대신 보증금을 내어준 뒤 채권 회수를 위해 강제경매를 신청한다. 문제는 전세사기를 당한 집의 보증금이 감정평가 가격보다 높다는 점이다. 낙찰을 받더라도 남는 게 없는 만큼 이런 물건은 수차례 유찰에도 주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HUG는 보증금을 일부라도 회수하기 위해 최근 대항력 포기를 택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전용 25㎡는 지난해 5월부터 감정가인 3억1400만원에서 경매가 시작됐지만 10번 유찰돼 감정가 대비 10%인 3177만원까지 떨어졌다. HUG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대신 내주고 채권 행사를 하는 물건으로 보증금이 3억800만원에 설정돼 있다. 보증금이 감정가와 크게 차지나지 않은 데다 각종 세금과 경매 비용을 더하면 감정가보다 더 많은 돈을 내야할 수 있어 입찰 참여자가 없었다. 결국 해당 물건은 낙찰 금액이 보증금보다 낮더라도 세입자가 받지 못하는 보증금 잔액에 대한 반환 청구권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입찰을 다시 진행하고 있다.

빌라 경매 건수는 당분간 늘어날 전망이다. 매매시장의 빌라 기피 현상이 경매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빌라 시장 자체가 살아나지 않는 한 경매 시장에서 빌라 경매 진행 건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HUG의 대항력 포기로 낙찰률은 좀 더 올라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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