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 신뢰성 가늠자 '예실차' 설명 꺼려해
IR자료서 예실차 축소 발표···아예 빼버리기도
규제 탓하지 전에 실적부터 명확하게 설명해야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요즘 대형 손해보험사는 불만이 많은 분위기다. 금융당국이 새 회계제도(IFRS17) 관련해 또 다시 규제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보험사들이 회계 처리를 자의적으로 해 이익 규모를 부풀린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새 규제가 나오면 손보사들은 혼란을 또 겪어야 한다. 시장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반발하는 이유다. 

하지만 대형 손보사들이 실적을 공개하는 방식을 보면 화를 자초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특히 예실차를 설명하는 보험사들의 모습은 과연 한 해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는 기업이 맞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예실차는 보험사가 인식한 예상보험금·사업비와 실제보험금·사업비의 차이를 말한다. 예상한 액수가 더 많으면 이익이 나고 반대는 손실이 발생한다. 

예실차는 IFRS17이 규정한 계정은 아니지만, 투자자가 보험사의 재무제표가 신뢰할 만한지 판단하는 데 있어 판단 근거가 되는 지표다. 보험사가 얼마나 보험부채 규모를 정확하게 추정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실차 이익과 손실 규모가 크지 않으면 그만큼 보험부채를 정확하게 측정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보험사 입장에선 약간의 이익을 거두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다. 보험부채를 비교적 보수적인 방식을 통해 정확하게 산출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형 손보사들은 예실차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꺼린다. 어떤 계정은 포함하고 어떤 계정은 빼는지 자세히 공개하지 않는다. 여러 방면으로 취재해본 끝에 보험사들은 예실차를 ‘예상보험금과 사업비+신계약 사업비 경험조정-실제 보험금과 사업비-발생보험부채 경험조정’으로 산출하고 있다.    

이 수식에 따라 각 사의 예실차를 파악해보면, DB손해보험은 올해 1분기 실적발표 자료에서 예실차 이익 규모를 축소해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재무제표 상으론 예실차 이익은 829억원이지만 실적발표자료엔 230억원으로 공개한 것이다. 약간의 예실차 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투자자들에게 어필해 기업 재무제표의 신뢰성을 높이려한 의도란 의심이 들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DB손보에 설명을 요구했지만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현대해상은 재무제표 공시 자체가 예실차를 찾기 어렵게 돼 있다. 보험수익과 비용을 각각 다른 항목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수익은 주석의 16번에서 설명하고 있지만, 보험비용은 19번 '보험계약 및 재보험계약' 항목에 넣어놓았다. 이에 현대해상의 예실차를 파악하려면 일일이 다른 표로 가서 하나씩 확인해야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한다. 영업수익과 비용은 같은 항목에서 설명하는 금융권의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러면 실적발표자료에 수치가 나오더라도 이것이 제대로된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실적발표자료는 참고사항일 뿐 기업 실적의 기준은 재무제표가 담긴 검토·감사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험수익과 비용의 각 항목을 찾더라도 현대해상의 예실차 이익을 파악하기는 여전히 힘들다. 보험수익의 경우 예실차에 포함되지 않는 ‘손실요소의 배분’ 계정을 따로 공개했지만, 보험비용에선 실제보험금 및 보험서비스비용에 합쳐 놓았다. 이러면 예실차를 파악하기 위해선 실제보험금 및 보험서비스비용 금액에서 손실요소 배분 금액을 따로 빼내서 구해야 한다.

지난해 대규모 예실차 이익을 적극 어필했다 논란을 불러온 메리츠화재도 정작 예실차 수치는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 실적발표 자료에서 ‘예실차 등’이란 항목에서 예실차와 함께 기타 다른 손익도 포함해서 공개하고 있다. 더구나 재무제표 주석의 보험손익 표에서도 ‘그 밖의 금액’이란 모호한 계정을 만들어 예실차를 파악하기 어렵게 해 놓았다.   

물론 최근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IFRS17 관련 규제는 무리한 측면도 있다.특히 현재 검토 중인 보험계약마진(CSM) 상각 시 할인율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은 IFRS17의 기본 개념에 맞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IFRS17에서 보험사들의 이익은 초반에 부풀리기 의도가 있더라고 시간이 지나면 ‘자정작용’을 거치기 때문에 회계 처리는 보험사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당국에 불만을 가지기 전에 손보사들부터 실적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고 본다. 금융사들이 그렇게 부르짖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선 자유뿐만 아니라 ‘책임’도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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