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시간
시간의 흔적이 쌓인 오랜 가구와 집을 사랑하는 디자이너 부부가 구옥에 신혼집을 차렸다.
길들여진 공간에서 노련한 가구들과 함께하는 새살림 이야기.
취향을 함께 쌓는 사이
부부가 같은 취미생활을 하면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자연스럽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며 응원하게 되고, 덤으로 추억까지 쌓이니 말이다. 반면 취미가 전혀 다를 때, 특히 많은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하는 취미는 미움을 받기 쉽다. 낚시, 게임, 또는 ‘한정판’이 붙은 무언가 를 모으는 경우 말이다. 구옥 빌라에 신혼집을 차린 장사라, 박용성 씨 부부는 취미를 공유하는 부부다. 그 취미는 바로 아름다운 공간을 탐색하고 빈티지 가구와 아트 피스를 모으는 것. 혼자만의 취미였다면 여태 기싸움을 했겠지만 주말마다 빈티지 숍으로 데이트를 다녔던 부부는 결혼을 계기로 더욱 과감하게 취미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부부는 신혼집도 빈티지스러운 구옥 빌라를 선택했다. 예산 안에서 거실이 넓은 집을 찾다 보니 오래된 빌 라가 눈에 들어왔다. 집을 보러 열 군데쯤 다녔을 때 이곳을 만났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할머니께서 맞이해 주셨어요. 그때 음악을 틀어두셨 는데 분위기가 너무 따뜻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들어오자마자 우리 여기에 살아야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오랜 시간이 쌓여 그윽한 빛깔이 흐르는 나무 문과 몰딩은 빈티지 마니아 부부에게 치명적인 매력 포인트였다. 부부는 도배를 새로 하고 바닥에 데코 타일을 깐 다음 홈 스타일링 위주로 집을 꾸미기로 결정했다. 오래된 현관의 타일, 방문과 손잡이, 체리색 몰딩을 고치려다 결국엔 그대로 남겨뒀다. 처음 느꼈던 친근함을 유지하고 싶어서. 주방은 완전히 새롭게 바꾸기로 했다. 하이엔드 주방 가구 브랜드의 디 자이너로 일하는 남편의 주도하에 철거부터 디자인, 타일과 가구 시공까지 부부가 직접 했다.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는 부부가 함께할 첫 집을 매만진 뜻깊은 순간이었다.
사연 많은 집
부부에게 가구는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애장품이다. 장사라 씨는 그중에서도 거실에 놓인 텍타의 널찍한 M1 테이블과 함께 놓인 토넷의 S320 의자를 가장 아낀다. 비정형의 커다란 상판을 지닌 테이블은 나란히 앉아도 부담스 럽지 않아 둘만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손님이 여러 명 모여도 여 유롭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의자는 원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는데 좌석이 넓다 보니 오래 앉아도 편안해 더욱 만족스럽다. 평소 좋아하던 가구들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그 진가를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물건이 자꾸만 늘어간다. 최근에는 텍타의 캔틸레버 의자 B25i를 구매했다. 남편 박용성 씨가 먼저 장사라 씨를 설득하기 시작했고, 빨간색을 워낙 좋아하는 아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는 ‘단종된 컬러라 더 이상 구할 수 없으니 사자’고 쐐기를 박았다. 빈티지 가구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애태운다. 종종 단종되어 구하기 어렵다 보니 맘에 드는 제품을 만나면 ‘이건 사야 해!’ 하며 마음이 요동 칠 수밖에 없다. 어느덧 부부의 집에는 10개가 넘는 의자가 생겼다.
또 장사라 씨가 책, 포스터와 그림, 오브제를 모으느라 부부의 신혼집은 바닥부터 벽까지 다채로워지는 중이다. 부피가 큰 블랙 컬러의 소파와 테이블, 스피커 등이 중심을 잡고 있기에 컬러풀한 소품들이 더해질수록 오히려 리듬감이 살아난다. 금손 디자이너 부부는 집을 단장하며 여가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손글씨로 달력을 만들기도 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에 어울리게 액자를 칠해 고풍스럽게 리폼했다. 최근 박용성 씨는 해외 직구한 까사리노의 빈티지 플라스틱 의자를 사포로 일일이 갈아 광을 내는 중이다. 의자의 면적이 워낙 커서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고 있다. 그렇기에 부부의 신혼집은 곳곳에 사연이 많다. 가구마다 데이트의 추억이 떠오르고, 작은 소품에도 취향과 애정이 담겨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공간과 일상을 애정으로 촘촘히 채울 수 있다니, 이런 신혼 참 좋다.
freelance editor 김의미
photographer 김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