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 계좌 자금 대출 아닌 RP투자에 활용
높은 업비트 의존도로 인한 '유동성 우려' 해소 목적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케이뱅크가 올해 1분기 환매조건부채권(RP) 투자를 대거 늘려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케이뱅크는 가상자간 거래소 업비트 실명계좌를 통해 증가한 예금을 대부분 RP에 투자했다. 업비트 계좌 의존도가 높으면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행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케이뱅크의 올해 3월 말 RP매수 잔액은 5조5471억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2조6848억원(94%) 크게 늘었다. 분기 기준 가장 많이 증가한 규모다. RP는 발행(매도)자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약속한 이자를 붙여 매수자로부터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대표적인 단기 상품이다. 금융사들이 보통 단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우량채권을 담보로 발행한다.
케이뱅크는 1분기 동안 업비트 계좌로부터 조달한 금액을 대부분 RP를 사들이는데 쓴 것으로 분석된다. 케이뱅크는 국내 시장점유율 1위 업비트와 계약을 맺고 실명 계좌를 발급해주고 있다. 업비트 실명계좌 항목인 기업자유예금의 3월 말 잔액은 6조7858억원으로 작년 말 대비 2조3712억원 크게 증가했다. RP매도가 늘어난 규모와 거의 비슷하다.
케이뱅크는 1분기에 대출자산을 늘리는데 있어 업비트 자금은 쓰지 않은 셈이다. 과거엔 케이뱅크는 업비트로 확보한 수신 금액을 대출채권을 확대하는 데 적극 활용했다. 주식, 가상자산 등 금융투자 ‘열풍’이 불었던 지난 2021년 말 업비트 예금 규모는 6조3022억원에 달했지만 RP매도 잔액은 1조8240억원에 그쳤다. 나머지 금액은 모두 대출을 내주는 데 투입된 것이다.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유동성 관련 우려를 줄이기 위한 작업이다. 업비트 실명계좌에 들어온 예금은 금리가 0%에 가깝지만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 가상자산 시장이 호황이면 저원가성 예금이 대거 들어와 은행의 수익성에 도움이 되지만, 시장이 침체되면 급격히 자금이 유출될 수 있다. 업비트 예금으로 내준 대출이 많을수록 자금 부족 문제를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케이뱅크가 업비트의 ‘사금고’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도 이러한 우려 때문이다. 케이뱅크 전체 수신액에서 업비트 계좌 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올해 3월 말 기준 케이뱅크의 예수금 가운데 업비트 계좌가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달한다. 지난해 4분기부터 가상자산 시장이 다시 타오르자 업비트 관련 예금이 크게 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출이 아닌 만기가 짧은 RP에 업비트 예금을 넣어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더라도 이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출을 위한 자금은 일반 예·적금을 활용하기로 했다. 케이뱅크는 지난해부터 자금조달 구조의 안정화를 위해 업비트 계좌를 제외한 예·적금을 늘리는데 전력을 다했다. 특히 인터넷은행은 은행채를 발행하기 어렵기에 정기예금을 최대한 확대해야 조달 구조의 불안정성이 해소된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동안 케이뱅크의 정기예금은 약 1조원 가량 늘었다.
케이뱅크는 당분간 업비트와 계약을 통해 얻는 재무적 이익은 수수료이익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업비트로부터 112억원의 수수료를 받았다. 업비트 자금을 RP에 투자하면 대출채권에 투입하는 것 대비 거두는 수익은 작다. 다만 금융기관의 예금으로 넣어두는 것 보다 금리가 더 높아 일정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그간 업비트 계좌 관련 여러 문제가 제기된 만큼 앞으로 업비트 계좌 자금을 대출자산에 활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정기예금 규모를 계속 늘려 조달구조도 안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