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집과 낭만 25

 유머 있는 인테리어

웃기는 사람이 매력 있고, 웃기는 인테리어도 역시 그렇다.

나는 웃기는 사람을 좋아한다. 웃기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예전 여성 연예인 한 명이 토크쇼에 나와 “웃기는 사람을 조심하라"며 이런 말을 했다. “웃다 보면 어느새 침대예요." 나는 그걸 TV로 보다가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진실이니까. 대학 다니던 시절에도 웃기는 애들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특히 여자들은 웃기는 남자를 그렇게 좋아했다. 아, 물론 잘생긴 게 먼저이긴 하다. 잘생긴 남자는 흔치 않다. 잘생긴 남자가 폭격한 지점에서 ‘잘’ 생기지 않은 남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 시절 살아남기 위한 최고의 무기는 학점도 아니고 패션 센스도 아니고 매너도 아니고 돈도 아니었다. 유머였다. 양평해장국집에서 30년을 써서 이가 다 나간 뚝배기 같은 얼굴을 가진 애들이 유머 하나로 여자 친구들을 쉽게 만드는 걸 보며 나는 생각했다. 역시 남자는 웃기는 게 최고구나. 나는 글로는 좀 웃길 줄 알지만 말로는 웃길 줄 모르는 유형이라 별 소용은 없었다. 글로 웃기는 것과 말로 웃기는 것은 참 다른 차원의 재능인 것이다.

사실 한국은 유머 감각이 꽤 부족한 나라다. 유행하는 코미디를 한번 생각해 보시라. 한국에는 능청스럽게 펀치 라인을 구사하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철저하게 짜맞춘 콩트나 몸으로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여전히 대세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조금 아쉽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어디까지나 말의 싸움이다. 수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 홀로 외롭게 전투를 벌여야 한다. 여기서 가장 필요한 건 지성이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잘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좋아야 한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재료 삼아 단 몇 마디 말로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동시에 웃겨야 한다. 이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대학 시절 웃기는 거 하나로 여자 친구를 만들었던 그 친구들도 어쩌면 무리 중 가장 똑똑한 녀석들이었을 것이다.

말로 웃기지 못하는 나로서는 집이라도 좀 웃기고 싶었다. 웃긴다기보다는 유머 감각을 좀 더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예전에는 옷으로 웃기려고 시도해 본 적도 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이상한 문구가 새겨진 모자나 티셔츠가 몇 장 있다. “I am not gay”라고 쓰인 티셔츠가 있다. 이태원 나갈 때 이걸 입으면 좀 웃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그건 마치 “나는 게이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보수주의자의 옷처럼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더 높았다. “Youth”라고 쓰인 티셔츠도 있다. 40대 후반의 늙은 얼굴로 “젊음”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으면 다들 웃을 것 같았다. 역시 오판이었다. 그걸 입고 나간 날 친구가 말했다. “너는 얼마나 젊어 보이고 싶으면 그런 티셔츠를 입고 다니니?" 중년이 젊어 보이려 용을 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정말이지 실패다.

옷으로 웃기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내 딴에는 고급 유머랍시고 입은 옷들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해석하기에는 지나치게 의미가 중의적이었다. 내가 선택한 건 결국 집이다. 집은 내가 사는 곳이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지도 않는 나만의 영역이다. 여기서만큼은 내가 부릴 수 있는 유머 감각을 마음껏 부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한국 사람들의 인테리어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유머라고 생각한다. 소품이나 그림, 포스터를 선택할 때도 단아하고 모던하고 세련된, 그래서 전체적으로 집의 모든 가구와 잘 스며드는 아이템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집을 방문했을 때 “세상에, 너무 예뻐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세상에, 저게 대체 뭐예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잘 없다. 모든 것은 균형이다. 조화다. 한국인은 대체로 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홍대 앞이나 성수동에는 검은색 오버사이즈 바지에 하얀 셔츠에 남색 봄버 재킷을 입은 친구들로 넘쳐나는 것이다.

아니다. 나는 튀지 않는 인테리어를 한 독자 여러분을 비꼬려는 게 아니다. 사실 집은 조화와 균형이 정말로 중요하다. 함께 사는 모든 사람의 개성을 모조리 집어넣은 인테리어를 하는 건 좀처럼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함께 살기 위해서는 타협을 봐야 한다. 불꽃처럼 개성이 타오르는 오렌지색 소파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도 결국 회색이나 검은색 가죽 소파를 살 수밖에 없다. 오렌지색 소파를 산 이후에는 어쩔 것이냐. 다른 모든 가구와 아이템을 소파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집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문이 열리는 지도에도 없는 나라 환상의 나라 앨리스의 나라”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아, 이 문장은 1980년대 중반 TV에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제곡이다. 이걸 기억하며 본능적으로 따라 불렀다면 당신은 내 연배다. 중년이 된 것을 환영한다.

다행히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독신이다. 독신에게는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식탁 위에는 밥상을 차릴 자리도 없이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독신이 아니었다면 이미 “제발 밥 좀 먹게 식탁 위 책 다 치우라고 2주 전에 말하지 않았어?”라는 동거인의 짜증에 “이 글만 마감하고 치울 테니 한 번만 용서해주라"고 사과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하하하.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식탁을 치우고 말고는 모두 내 자유다. 아, 여기까지 쓰다 보니 독신인 내가 독신이 아닌 독자 여러분보다 행복한 건 전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이놈의 자유를 만끽하느라 나는 매일 저녁 식탁이 아니라 소파 앞에 쭈그려 앉아 쿠팡이츠로 배달된 밥이나 먹고 있다. 그깟 자유를 누리느라 말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벌써 2주간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지 않았다. 지금 다용도실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다고 하는 거대한 플라스틱 무덤이나 마찬가지다. 문을 여는 순간 플라스틱 더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이런 주제에 <리빙센스>에 인테리어와 관련한 칼럼을 쓰고 있다니 정말 무엄하기 짝이 없다. 독자 여러분의 용서와 이해를 빈다.

 

말로 웃기지 못하는 나로서는 집이라도

좀 웃기고 싶었다. 웃긴다기보다는

유머 감각을 좀 더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이 글은 계속되어야 한다. 어쨌든 나는 유머 감각이 있는 집을 만드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 같다. 이 집에는 정말이지 온갖 웃기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가장 웃기는 물건은 만화가 강풀이 집들이 선물이랍시고 보내준 오렌지색 교통 정비용 꼬깔콘이다. 나는 그가 정말 대단한 미감을 가진 만화가라고 생각한다. 그 따위 물건이 이 집에 어울릴 거라는 상상력을 갖기란 쉽지 않다. 플라스틱으로 된 거대한 체리 모양 보관함도 있다. 보관함으로 쓰지도 않는다. 저걸 산 유일한 이유는 인스타그램 광고에 낚였기 때문이다. 순전히 웃기다고 생각해서 샀다. 이게 집에 어울릴지 아닐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뭐, 결국은 어울리게 됐으므로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쓸모 있는 물건은 아니다. 이 집에 있는 가장 웃기는 물건 중 하나는 요리사 모양의 타이머다. 라면을 끓일 때 유용하겠다 싶어 파리 벼룩시장에서 샀다. 내부 태엽이 망가져서 타이머로는 쓸 수가 없다는 걸 한국에 도착해서야 발견했다. 그래도 웃겨서 버릴 수가 없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 집은 세련된 스탠드업 코미디라기보다는 슬랩스틱 코미디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내 유머 감각이 그렇게 세련된 건 아니었다는 고통스러운 증거다.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내가 세련되게 잘 웃길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학 시절에도 못 했던 걸 지금이라고 잘할 리는 없다. 그래도 엉터리 유머 감각으로 가득한 내 집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은 있다. 대개는 오래된 친구들이다. 얼마 전 한 친구가 도어스토퍼를 선물했다. “너한테 너무 어울리는 물건을 발견했어"라는 메시지와 함께 도착한 도어스토퍼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바닥에 흘린 모양이었다. 이런 건 블랙과 화이트로 세련되게 장식한 집에는 어울릴 리 없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독자 여러분 집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이 집에는 더없이 어울린다. 나는 그걸 볼 때마다 뭐 이따위 물건을 만드는 인간들이 있나 싶어 피식피식 웃는다. 어쩌면 그 순간의 웃음만으로도 괜찮은 것이다.

김도훈@closer21

오랫동안 ‹씨네21›에서 영화기자로 일했고,‹GEEK›의 패션 디렉터와 <허핑턴포스트> 편집장을 거쳐 «이제 우리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라는 책을 썼다.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물건들과 아름다운 물건들이 공존하는 그의 아파트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김도훈 나라다.


CREDIT INFO

editor    심효진
words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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