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 합병 심사 단계서 낙방 사례 연이어 나와
더욱 깐깐해진 금융당국 심사 영향 분석
“투자자 보호 긍정적”···“시장 위축 우려” 목소리도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증시 문을 두드리는 기업에 금융당국의 깐깐한 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도 이를 피하지 못하고 있어 주목된다. 스팩 합병 취소가 연이어 나오고 있는 데다 증권신고서 정정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는 의견과 함께 시장 위축 우려도 나온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날 SK증권제8호스팩은 의학·약학 연구개발 기업 노브메타파마와의 합병을 취소한다는 공시를 했다. 이는 SK증권제8호스팩이 지난해 7월 말 코넥스 상장사인 노브메타파마와의 합병 공시를 낸 지 10개월여만이다.

SK증권제8호스팩 측은 “노브메타파마와의 합병계약서상 선행조건이었던 한국거래소의 합병 상장예비심사에서 미승인 통보가 접수됐다”며 “이에 따라 노브메타파마와 협의한 뒤 합병계약을 해지했다”라고 밝혔다. 이번 합병 취소에 따라 SK증권제8호스팩은 다시 거래가 재개됐다.

스팩 합병 실패 사례는 최근 연이어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유진스팩7호는 지난 17일 셋톱박스 제조사인 케이엑스인텍과의 합병이 취소됐다고 공시했다. 유진스팩7호는 지난해 8월 말 케이엑스인텍과 합병을 결정하고 한국거래소 심사를 받아왔다. 그러나 심사 중 케이엑스인텍의 내부사정이 발생하면서 합병 상장예비심사를 철회했다.

이달 초에는 전장용 카메라 장비업체인 루리텍과 합병하려던 대신밸런스제16호스팩이 합병을 철회했다. 지난달에는 한화플러스제2호스팩이 액셀러레이터(AC)인 씨엔티테크와의 합병에 실패했다. 이 밖에 대형 스팩으로 주목받았던 하나금융25호스팩, 유튜브 채널 ‘삼프로TV’ 운영사 이브로드캐스팅과의 합병 시도로 이슈가 됐던 NH스팩25호도 각각 합병 취소 공시를 냈다. 

표=김은실 디자이너.
표=김은실 디자이너.

이 같은 상황은 금융당국의 깐깐해진 심사와 관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은 이미 지난해 2월부터 “증권사에 유리한 거래조건과 기관투자자들의 발기인 견제 부족 현상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며 합병 심사 강화를 예고했다. 지난해 말에는 스팩 상장 기업의 고평가 논란을 막기 위해 기업공시 서식 작성기준 개정에 나서면서 심사 강화 의지를 내비쳤다.

실제 스팩 합병 취소 관련 공시인 ‘기업인수목적회사관련합병취소·부인사실발생’ 중에서 심사와 관련된 사례는 지난해 13건으로 전년 2건에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올해의 경우 아직 상반기가 지나지 않았음에도 7건이나 공시가 나온 상황이다. 

스팩 상장 시에도 금융당국의 깐깐함이 드러나고 있다. 스팩 IPO 공모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팩 IPO 시 제출하는 증권신고서의 정정 사례도 다수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정 후 증권신고서를 살펴보면 주로 투자 위험들을 기존보다 구체적으로 적시한 사례가 많았다.

올해 상장한 16개 스팩 중에서 절반 이상인 10곳의 스팩이 증권신고서를 정정했다. 이 중 유진스팩10호와 비엔케이제2호스팩, 신한제13호스팩, 유안타제16호스팩은 두 차례나 증권신고서를 고쳐야 했다. 

스팩 합병이나 상장 문턱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일반 투자자 보호차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상장 자격이 없거나 고평가된 기업들이 증시에 계속 상장하게 될 경우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심사 강화는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반대로 시장 위축과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스팩이 잠재력 있는 기업을 발굴하는 창구라는 점에서 시장 위축 우려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며 “매출이 일정하게 나오는 안정성이 있는 기업만 시장에 들어간다고 하면 기술력이 높은 이익 미실현 기업들에 대한 투자는 스팩뿐만 아니라 VC(벤처캐피탈)단에서부터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스팩 투자자와 관련해선 길어지는 합병 심사 탓에 오랫동안 거래하지 못하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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