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급등에 사업성 저하
수억원 분담금에 주민 반발 나올 수도
2만6000가구 이주대책도 아직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1기 신도시에 선도지구를 지정해 2030년 입주를 약속했지만 시장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공사비 급등에 따른 사업성 저하와 촉박한 공사기간, 이주대책 부재 등으로 인해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은 오는 6월 공모를 시작해 11월에 선도지구 지정이 완료된다. 선도지구로 지정된 구역은 바로 내년부터 사업이 가능하다. 2025년 특별정비구역 지정과 2026년 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 등을 거쳐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목표로 한다.

선도지구란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등 1기 신도시를 향후 어떻게 재건축할지 보여주는 일종의 시범 사업지구다. 각 1기 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에 돌입하는 단지로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국토부는 23일 ‘1기 신도시 정비 선도지구 선정 계획’을 발표하며 올해 분당(8000가구), 일산(6000가구), 평촌·중동·산본(4000가구) 등 2만6000가구를 선도지구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1기 신도시 선도지구 계획은 속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는 선도지구로 지정되면 안전진단을 면제하고 정비구역 지정부터 관리처분계획 수립까지 최소 5년 이상 걸리는 인허가 절차를 2년 내 마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선도지구 착공 일정을 2027년으로 못 박은 건 다음 대선 전까지 성과를 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정부의 계획에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당장 공사비 급등에 따른 사업성 저하가 걸림돌로 꼽힌다. 정부는 1기 신도시 재건축 용적률을 기존 180~200%에서 법정 상한의 1.5배까지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최대 750%의 용적률(준주거로 종상향할 때)을 적용받을 수 있지만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과밀화 우려 등을 고려할 때 실제 적용 용적률은 350% 전후가 될 전망이다.

이마저도 용적률 상향에 따른 공공기여(규제 완화 조건으로 기반시설 부지나 설치비용 부담)와 급등한 공사비를 고려한다면 사업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강남권 재건축 사업도 수주 경쟁이 없는 상황에서 사업성이 더 떨어지는 1기 신도시 재건축에 건설사들이 선뜻 나설지 미지수다”고 말했다.

사업성 저하로 분담금이 늘어나면 주민 반발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경기주택도시공사가 2022년 말 1기 신도시 주민을 대상으로 적정 분담금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2억원 이하가 적당하다는 의견이 78.6%였다. 다만 최근 급증한 공사비를 고려하면 분담금은 2억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사업 규모에 차이가 있으나 서울 노원구 대표 재건축 단지인 상계주공5단지의 경우 조합원 분담금이 5억원대로 알려지면서 재건축 중단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정부가 제시한 착공 이후 공사기간(3년)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2027년부터 1년간 이주와 철거를 진행하고 2년간 아파트를 짓는다면 2030년 입주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선 최근 아파트 공사기간을 48개월 수준으로 책정하는 추세다. 과거 아파트 공사 기간은 36개월 수준이었지만 2022년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 이후 이전보다 최대 1년 이상 길게 잡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건설사들은 공사기간을 산정할 때 기본 36개월(3년)에 4~5개월을 더 잡는 추세다”며 “주 52시간 근무제로 작업시간이 줄어든 데다 각종 환경규제와 중대재해 방지를 위한 안전규제 등이 강화되면서 완공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이주·철거기간 1년을 제외하면 2년 내 아파트를 지으라는 얘기인 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고 덧붙였다.

이주대책 수립도 정부와 지자체의 과제로 거론된다. 이번에 선정되는 선도지구 물량은 2만6000가구다. 2027년 착공 전까지 이주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민마다 사는 환경과 집의 넓이도 다 다른데 이들이 한꺼번에 이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이 장기계획인 만큼 서두를 필요 없다고 조언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비물량의 10~15%를 선도지구로 선정하고 이후 2030년 입주를 목표로 정비가 추진되는데 현실적으로 빠듯한 기한이다”며 “1기 신도시의 정비는 단기질주가 아닌 마라톤이므로 향후로도 꾸준한 진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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