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실질 근로소득 사상 최대 폭 감소
고물가 여파, 임금인상 시차 작용 분석도
“생활비 부담 증가가 본질, 보조금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고물가 여파로 올 1분기 실질 근로소득이 통계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국민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에 특화된 소득보전책, 생활비 부담 경감책을 마련해야 한단 조언을 내놓았다. 경쟁 제한적인 시장 상황 개선 등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규제개혁으로 국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란 진단이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소득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이날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12만2000원으로 1년 전보다 1.4% 증가했다. 근로소득(329만1000원)이 1.1% 줄었으나, 사업소득(87만5000원)과 이전소득(81만8000원)이 각각 8.9%, 5.8% 늘어 전체 명목 소득은 증가했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소득은 전년 대비 1.6% 줄었다. 1분기 기준 2017년 1분기(-2.5%) 이후 7년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특히, 실질 근로소득은 3.9% 줄며 2006년 1인가구 포함 통계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실질 근로소득이 1.9% 줄었던 지난해 4분기보다도 감소폭이 더 커졌다. 

◇ “소비자물가 상승·상여금 감소에 실질소득 줄어”

통계청 관계자는 “1분기 기준 실질소득이 가장 낮은 것은 소비자물가 상승이 반영됐고, 상여금이 조금 감소한 것도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물가상승이 실질 소득감소로 이어지며 국민들의 주머니는 얇아졌다. 2020년까지 2% 미만을 유지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1년(2.5%)을 기점으로 상승국면에 돌입,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2022년엔 5.1%까지 뛰었고 지난해도 3.6%를 기록했다. 올해도 농산물 물가 불안이 이어지면서 3% 안팎의 상승률이 이어졌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인플레이션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물가가 전혀 오르지 않으면 경기침체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성장세가 뚜렷했던 1960~1980년대까지는 두자릿 수 물가상승률도 흔했지만, 국민소득이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늘면서 부담을 메웠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실질소득 증가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3% 내외의 물가상승에도 시민들이 체감하는 고통이 극심한 상황이다. 실질소득이 감소하면 소비 위축을 가져와 내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내수가 부진하면 균형성장에 악영향을 주고 성장률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단 지적이다.

일단, 최근 실질소득 감소는 인플레이션 시차가 작용하는 상황이란 분석이 나온다. 먼저 물가가 오른 뒤 임금 보상 요구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 시간이 지나면 임금도 함께 오를 가능성이 있어 지켜봐야 한단 것이다. 

◇ “소득 보전에 초점 맞춰야”

1990년대 이전 고도성장기엔 임금협상할 때 앞으로 물가가 오를 걸 예상하고 인상 수준을 결정했다. 최근 저물가에 익숙해지면서 고물가에 대한 대비나 인식이 없던 상황에서 갑자기 물가가 뛰었다. 

전문가들은 실질임금 감소의 본질을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물가의 급격한 상승을 부른 생활비 부담을 주목해야 한단 조언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필요시 정부 재정을 통해 보조해줄 수도 있다”며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국민 부담이 커지자 보조금을 주기도 했다. 이걸로 다 해결하진 못하지만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에 초점을 맞춘 소득 보전이 필요하단 진단도 나온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물가상승은 주로 농산물과 에너지가 주도하고 있어 통화정책 등 정부가 손을 쓰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에너지,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면서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고, 유가는 세금을 내릴만큼 내렸기에 물가 억제에 한계가 있다. 소득을 어떻게 보존해 주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물가가 여전한 상황에서 국민 전체에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경제 전반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필요시 저소득층에 한정한 소득보전 정책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실질소득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는 생산성 증가에서 찾아야 한단 조언이다.

양 교수는 “생산성이 늘지 않은 상태에서 임금을 올리면 다른 데서 줄여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며 “투자를 늘리고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개혁을 좀 더 체계적, 대규모로 해야 한다. 지금 투자가 떨어졌지만 우리나라 1인당 자본은 낮은 편이 아니다. 미국의 94% 정도인데 투자 수익률이 낮다보니 투자를 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률을 높여 투자를 활성화할 방안이 규제개혁이란 설명이다. 

경쟁 제한적인 시장 상황도 문제란 지적이다. 양 교수는 “경쟁을 하지 않으니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면들이 있다. 국내 경쟁을 풀어줘야 한다”며 “새 산업 새 상품 발굴할 때도 규제 때문에 막히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런 부분도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단 조언도 나온다. 하 교수는 “중요한 것은 좋은 일자리가 많이 나와야 한다. 내수가 많이 위축돼 있기에 임금이 잘 못올라가는 면도 있다”며 “근로자 상당수가 서비스업, 중소기업쪽에 종사한다. 내수 활성화를 위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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