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말부터 1년 4개월 간 동결···한미 금리차는 2%포인트 유지
물가 상승률 2% 안착 불확실성 주효···부동산 PF 리스크 등 변수 맞물려 부담
미 연준 신중론도 금리 인하 명분 줄여···환율 흐름 불안도 통화 긴축 기조 한몫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한국은행이 23일 올해 상반기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개최하고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지난해 1월 기준금리를 3.25%에서 3.5%로 인상한 뒤 2월부터 4월, 5월, 7월, 8월, 10월, 11월, 그리고 올해 1~2월과 4월에 이은 11회 연속 동결이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는 11개월째 2.00%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동결을 선택한 배경으로는 물가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는 점이 지목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월(3.1%), 3월(3.1%) 3%대를 유지하다가 지난달 2.9%로 집계되며 2%대로 내려왔지만 과일을 비롯한 농축수산물이 10.6% 뛰며 한은의 안정 목표인 2%로 안착할지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앞서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 2일 물가 상황 점검 회의에서 "향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근원물가를 중심으로 둔화 추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나 지정학적 리스크 전개 양상에 따른 유가 추이, 농산물가격 강세 지속기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고물가 우려가 가시지 않은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고공행진과 내수 위축,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따른 금융 리스크 등 인상과 인하 요인이 맞물린 점도 동결 배경으로 거론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 인하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점도 한은의 금리 동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선제적 금리 인하는 현재 역대 최대 수준인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확대해 자본 유출 우려와 환율 불안을 높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CPI(소비자물가지수)가 둔화되며 9월 금리 인하 기대가 높아졌지만 연준 인사들은 매파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시카고페드워치(CME)에 따르면 연준의 9월 인하 가능성은 60% 전후로 여전히 안갯 속이다.
22일(현지시간) 공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의사록에서 위원들은 1분기 물가상승률 지표에 대해서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며 "인플레이션이 2% 목표치를 향해 움직일 것이라는 확신을 얻기까지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도 지난 21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물가) 지표 둔화세가 3∼5개월 정도 지속돼야 연말께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환율 흐름 역시 한은이 금리를 섣불리 낮추지 못하는 이유다. 시장의 기대와 달리 미국의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점차 사라지고 이란·이스라엘 무력 충돌까지 발생하자 지난달 16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약 17개월 만에 1400원대까지 뛰었다. 이후 다소 진정됐지만 여전히 1360원대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원화 가치가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할수록 같은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높아지는 만큼 인플레이션 관리가 제1 목표인 한은 입장에서 환율은 통화정책의 주요 고려 사항이다.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예상치를 웃돌고 있는 것도 기준금리 인하 명분을 약하게 만들었다. 올해 1분기 우리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1.3%로 0.6% 내외였던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수출 호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건설기성과 민산소비 등이 개선되면서 깜짝 성장을 이끌었다. 이에 따라 한은도 2.1%였던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이날 2.5%로 크게 올렸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종전 2.2%였던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상향조정했다. 무디스는 2.0%에서 2.5%로, 한국금융연구원은 2.1%에서 2.5%로 높였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HSBS, 노무라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 안팎으로 상향했다. 올해 우리 경기가 기존 예측보다 좋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은이 서둘러 금리를 낮출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관심은 금리 동결 이후 열리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기자간담회에 쏠리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2일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지연과 경제성장률 상향 조정, 환율과 국제유가 상승 등을 언급하며 금리 인하 시점의 '원점 재검토' 필요성을 거론한 바 있다.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 필요성을 언급한 소수 의견이 나왔는지도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