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장-주한미국대사 비공개 면담 내용 추가 공개
소송 과정에서 ‘구체적 내용’ 확인···하나금융지주 임원 이름은 비공개
송기호 “국제 중재재판서 행정부 대응 사법부가 확인·통제 의미”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3100억원의 배상책임이 인정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 정부 사이 투자자-국가 국제분쟁해결제도(ISDS) 사건 판정문의 비공개 내용을 추가로 공개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사법부가 국제 중재재판 절차과정에서의 행정부의 대응을 확인하고 통제한 최초 사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 부장판사)는 16일 민변 송기호 변호사(법무법인 수륜아시아)가 판정문 전면 공개를 요구하며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비공개처분 취소소송’ 선고기일에서 사실상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법무부가 비공개한 내용 중 하나금융지주 이사장의 이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모두 공개하도록 했다. 소송 비용도 80%를 법무부가, 20%를 송 변호사가 부담하도록 했다.
재판부가 법무부의 비공개 처분이 부당하고 본 내용은 ‘주한미국대사와의 비공개 면담에 대한 금융위원장의 증언’이다. 이 내용은 청구 당시 그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소송 과정에서 법무부가 비공개 사유를 재판부에 밝히며 ‘주한미국대사와의 비공개 면담’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송 변호사는 “론스타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어떻게 미국 정부를 동원했는지, 미국이 이 사건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내용으로 추정한다”라고 말했다.
그간 재판부는 당사자를 참여시키지 않고 제출된 공개청구정보를 비공개로 열람·심사하는 인카메라(In Camera) 심리제도를 통해 처분의 적법성을 판단했다. 판정문 원본과 사본, 번역본을 모두 재판부에 제출하도록 하고 직접 비공개 정보를 확인한 것이다.
송 변호사는 “국제중재 판정문의 공개 범위 역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고, 중재재판 절차 과정에서 행정부의 대응을 사법부가 확인해 통제한 최초의 판결이다”면서 “제2, 제3의 론스타 사태와 같은 거액의 국제중재사건에서 투명한 정보공개의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2022년 8월31일 ISDS 중재판정부는 대한민국이 ‘투자보호협정의 공정 공평 대우 의무를 위반’해 론스타와 하나금융지주 사이의 2011년 7월 외환은행 주식 양도계약 등에 개입했다며 대한민국이 론스타에 2800억원을 배상(이자 포함시 약 3100억원)하라고 판정했다.
송 변호사는 법무부가 공개한 판정문에 우리 정부가 패소한 핵심 내용, 하나금융지주 임원의 이름 등이 비공개됐다고 주장하며 정보공개청구에 이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배상 책임을 발생시킨 권한 남용 행위에 금융위원회 등 관계자가 관여된 사실이 판정문을 통해 확인되고, 향후 법률적 책임 소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판정문 전문 공개가 필요하다는 게 송 변호사의 주장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ISDS 판정에 불복, 지난해 9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취소신청을 제기했다. 중재판정부가 결정적 증거 없이 한국 정부의 배상의무를 인정했고, 증거 채택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변론권과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아 절차상 위법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취소신청이 기각될 경우 정부가 추가로 부담할 이자는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법무부는 취소신청이 인용되면 정부의 배상금 원금과 이자 지급 의무는 소멸하게 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