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6개월 구속기간 만료···검찰 “신속한 심리 진행 희망”
변호인 “열람등사도 완료 못 해 기일 촉박···방어권 보장해달라”
재판부 “세간의 관심이 많은 사건···오해 사지 않도록 협조해달라”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제빵 기사들의 노조 탈퇴를 강요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수사기록이 4만 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변호인단은 재판부가 미리 지정한 기일 내에 증거 동의 여부를 밝히기 어렵다고 했으나, 재판부는 재판 지연을 우려하며 신속한 검토를 요구했다.
허 회장의 구속기간은 오는 10월 만료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조승우)는 14일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허 회장과 등 피비파트너즈 법인 등 19인에 대한 1차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공판기일 전 재판의 쟁점과 증거의 정리, 심리 계획 등을 논의하는 절차다. 허 회장은 출석 의무가 없어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허 회장의 변호인단은 절차 진행에 의견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미리 지정된) 5월30일까지 증거 인부 의견을 밝히기 어렵고 촉박하다”면서 6월18일까지 증거인부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변호인은 “수사 기록이 본책 70권, 별책 14권으로 총 4만 쪽이 넘는 분량이다. 기소 이후 열람등사를 신청해 작업 중이지만 앞으로도 며칠이 더 걸린다”면서 “미리 열람등사가 완료된 부분이라도 먼저 검찰이 제공해 준다면 기록 검토에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열람등사가 완료된 기록 일부라도 먼저 교부해 달라는 요청이 없었지만, 곧바로 드릴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면서 “피고인이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구속 영장이 발부됐고, 추후 또 발생할 수 있는 증거인멸 염려 등을 고려해 가급적 구속기간 내에 신속하게 재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검사는 변호인단이 증거 인부 의견을 빨리 밝혀주길 바란다. 그래야 곧바로 입증 계획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다”면서 “신속한 심리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허 회장 지난 4월5일 구속돼 같은 달 21일 기소됐다. 1심에서의 구속기간은 ‘공소제기일’로부터 최장 6개월이다. 10월 중순까지 1심 판결이 선고되지 않는다면 그는 석방된다. 검찰이 수사 중인 별건 수사도 없어 다른 범죄사실로 재차 구속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은 없다. 검찰이 신속한 재판 진행을 요구하는 배경으로 풀이된다.
이에 변호인은 “기록을 검토하고 당사자 면담, 입장 정리를 하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 절차를 무시하고 당사자들에게 빠른 재판을 강요할 수는 없다”면서 “피고인들이 충분히 방어권을 행사하면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달라”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세간의 관심이 많은 사건이고, 행여나 피고인 측에서 시간을 끌려고 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진행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된다”면서 “번거롭더라도 (미리 지정한) 5월30일 한 번 더 준비기일을 열겠다”라고 정리했다. 재판부는 변호인의 의견 개진에 따라 범죄사실을 자백하거나 공소사실에 동의하는 피고인들을 분리해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허 회장은 제빵 기사 등을 관리하는 피비파트너즈 내 노동조합인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가 사측의 노조탄압을 규탄하거나 ‘사회적 합의’의 이행을 촉구하며 사측에 비판적 활동을 이어가자 ▲2021년 2월~2022년 7월 화섬노조 소속 조합원 570여 명을 상대로 노조 탈퇴를 종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21년 5월 민주노총 화섬노조 소속 근로자라는 이유로 승진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부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승진 인사에서 배제한 혐의 ▲2019년 7월 사측에 친화적인 한국노총 조합원 모집을 지원하는 한편, 2021년 4월~2022년 8월 한국노총 노조 위원장에게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터뷰를 하게 하는 등 노조의 조직과 운영에 깊게 개입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허 회장이 그룹 전체를 총괄하며 노조에 대한 대응 방안을 최종 결정·지시하고, 노조 탈퇴 현황과 국회·언론대응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는 등 범행을 주도했다고 결론 내렸다.
공소사실에 대한 허 회장의 입장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허 회장보다 먼저 구속기소된 황재복 SPC 대표의 사건은 이날 허 회장 사건과 병합된 것으로 파악됐다. 황 대표 변호인은 노조법 위반 혐의 일부만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범죄사실을 다투는 입장을 밝혔다. 뇌물공여 혐의 역시 일부 인정하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백하는 공소사실과 관련해서는 피고인이 반성하는 점, 고령인 점 등을 양형에 참작해 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