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코로나·전쟁 여파, 증액 불가피”
KT ‘물가변동배제특약’ 내세워
선례 나오면 ‘유사소송’ 쏟아질듯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쌍용건설과 KT 간 공사비 증액 소송전에 건설업계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현장에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어서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을 인정하는 선례가 나올 경우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KT는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쌍용건설에 공사비를 모두 지급했고 비용을 추가로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법원으로부터 확인받기 위함이다. 이에 쌍용건설은 “공사비 청구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며 맞고소를 예고했다.
양사는 지난해 4월 완공한 KT 판교 신사옥 관련 공사비 초과분을 놓고 분쟁 중이다. 쌍용건설은 코로나19와 러-우 전쟁 여파로 인해 2020년 계약 체결 당시보다 원가가 크게 오른 만큼 공사비를 171억원 증액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KT는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근거로 증액을 거부했다. 해당 특약은 계약 후 입찰 당시보다 물가가 올라도 공사비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KT는 한때 협상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10월에 이어 올해 3월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항의 집회를 예고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KT가 협상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면서다. 하지만 KT는 쌍용건설과의 ‘대화의 시간’을 포기하고 ‘사법부 판결’를 택하게 됐다. KT는 쌍용건설 요구대로 공사비를 미리 지급했고,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액(45억5000만원)과 공기연장(100일) 요구도 수용했다는 입장이다.
KT 관계자는 “쌍용건설은 계약상 근거 없이 추가 공사비 지급을 요구하며 시위를 진행하는 등 KT그룹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훼손해 왔다”며 “불필요한 논란을 해소하고 사안을 명확하게 해결하고자 법원의 정당한 판단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10월 판교 사옥 집회 이후 ‘상생협력 하겠다’는 KT를 믿고 기다려왔는데 황당하고”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소송을 제기하면서 정부가 중재하던 분쟁조정위원회는 물 건너갔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분쟁조정위원회는 분쟁당사자 중 일방이 소를 제기한 때에는 조정을 중지하고 이를 당사자에게 통보하게끔 돼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국토교통부 분쟁조정위가 7개월 만에 엎어졌다.
이번 소송전은 KT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결과에 따라 공사비 협상을 진행할 수 있어서다. 현재 쌍용건설 외에도 롯데건설과 현대건설, 한신공영 등이 공사비 증액분을 놓고 KT와 갈등을 빚고 있다.
롯데건설은 KT에 요청한 증액분 규모가 1000억원에 달한다. 서울 광진구 ‘자양1재정비촉진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발주처인 KT에 러-우 전쟁 등에 따른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급등으로 공사비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현대건설도 KT에 ‘광화문 KT 사옥 리모델링 공사’ 관련 300억원을 추가 요구했다. 하지만 KT는 두 건설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현장은 내년 상반기 준공 예정이다. 준공 이후에도 추가 공사비가 지급되지 않을 경우 쌍용건설과 비슷한 양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공사비 협상 기회가 마련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공사비 인상분을 두고 전국에 비슷한 상황에 놓인 현장들이 많으므로 선례가 마련된다면 건설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