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서 한국, 일본에 ‘성노예 표현이 사실에 반한다’ 확인 청구
외교부 “항의 등 했다”면서도 ‘외교적 신뢰’ 이유로 비공개 결정
송기호 변호사 “일본, 외교적 도발 반복···관계 왜곡 피하려면 공개 필요”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성노예’라 표현하면 안 되고 한국 정부도 이를 확인했다고 공문서를 통해 반복 주장하는 가운데, 외교부가 공식 문서를 통해 유감 또는 항의했다는 사실이 법정에서 확인됐다.
법원은 이 유감 또는 항의 문서에 대한 비공개 심리를 진행할지 검토하기로 했다. 재판부가 문서제출을 명령할 경우 관련 외교문서를 법원이 직접 들여다보게 된다.
외교부는 지난 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 부장판사)는 심리로 열린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소송은 한국 정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한다고 일본 정부에 확인해 줬다는 문서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19년 일본의 외교청서에 대해 한국 정부가 유감 또한 항의한 문서를 공개하라며 민변 송기호 변호사(법무법인 수륜아시아)가 제기했다.
일본 정부는 2019년 나루히토가 일왕으로 즉위한 이후 올해까지 외교청서에 “(일본군 위안부에)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은 2015년 12월 일한 합의 때 한국 측도 확인했으며 동 합의에서도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고 기재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가 전시 성노예로서 강제 연행된 것이 아니며, 한국 정부도 이를 인정했다는 취지다.
이날 변론기일에서 외교부 측 대리인은 우리 정부는 일본의 주장에 동의한 바 없으며 일본 정부의 일방적 발표에 대해 유감 또는 항의한 문서가 존재한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청구된 문서를 공개할 경우 양국이 오랜 기간 쌓아온 외교적 신뢰 관계에 큰 타격을 주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외의 외교 현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비공개 처분이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 정보를 공개할 경우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외교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는 유감 또는 항의 문서가 존재하는지 의문이고, 공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재판부의 직접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인 카메라(In Camera) 심리를 요청했다. 인 카메라는 재판부가 당사자를 참여시키지 않고 제출된 공개청구 정보를 비공개로 열람·심사하도록 한 정보공개법상 심리제도다. 행정소송에서 쟁점이 된 정보가 비밀정보에 해당할 경우, 이 정보를 직접 보고 확인해 판단하기 위해 대상 정보를 가져올 것을 명령하고 법관만 이 정보를 열람하는 방식이다.
이에 외교부 대리인은 관련 정보가 ‘3급 비밀’에 해당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재판부는 “3급 비밀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제출하는 게 되느냐”고 반문하면서 추후 문서제출명령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정리했다. 재판부가 문서제출을 명령할 경우 행정부가 비공개한 외교문서를 사법부가 들여다보게 된다.
재판부는 다음 변론기일을 추후에 지정하겠다고 했다.
송 변호사는 “일왕 교체 이후 일본은 지속적으로 외교 도발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외에도 반도체 수출 규제, 독도 영토 주장, 최근엔 네이버를 상대로 한 일본 당국의 LINE(라인)야후 지분 매각 압박 등으로 이어졌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후(戰後) 국제관계 틀 속에서 일본을 묶어둔 사안인데 (성노예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한국 정부의 동의가 사실이라면, 일본의 족쇄를 완전히 풀어준 외교적 참사다. 한국이 이를 묵과 또는 방조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2015년 한일 양국의 외교 협상 내용의 공개를 청구한 소송은 이번이 두 번째다. 송 변호사는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문서를 공개하라며 2016년 소송을 제기(1차 소송)했으나, ‘국익 침해’ 등을 이유로 기각된 바 있다.
그는 일본이 공문서를 통해 ‘한국이 성노예라는 표현이 사실에 반한다고 확인했다’고 발표한 부분에 한해 그러한 확인이 있었는지, 유감 또는 항의한 문서가 있는지 공개하라며 지난해 8월 이번 소송(2차 소송)을 제기했다.
송 변호사는 “일본 정부가 선제적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해 중대한 사정변경이 있다”면서 “일본이 일방적이고 공식적으로 국제사회에 발표했는데, 당사자인 한국이 공개를 거부한다면 일본 정부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일 관계 왜곡을 막기 위해 반드시 규명이 필요한 내용이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