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들, 단체협약 위반 주장···“노조와 논의 없어”
“근로기준법상 경영상 해고 실체적 요건도 충족 못 해”
사모펀드 인수 후 체질 개선 노력에도 적자 전환···상장폐지 수순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락앤락이 영업손실 누적을 이유로 들며 진행한 정리해고가 부당해고라는 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이 나왔다.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면서 근로기준법이 요구하는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26일 락앤락 안성사업장에서 해고된 노동자 15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노동자들 손을 들어줬다.
이 구체신청은 지난해 11월 락앤락이 안성사업장(생산·물류센터) 외주화 계획을 밝히고,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31명을 지난해 1월31일 해고한 것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이다. 31명 중 16명은 지난달 14일 회사의 추가 희망퇴직 제안을 수용했고, 나머지 15명만 부당해고 구제신청 절차를 진행했다.
시사저널e 취재에 따르면, 근로자들은 해고의 부당성을 다투면서 회사가 단체협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단체협약에 따라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할 수 없음에도 회사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2021년 락앤락 노사는 매각·분할·합병·외주·하도급·정리해산 등 사유 발생시 ‘노조와 논의해 결정’하며 ‘고용안정을 원칙으로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근로기준법이 엄격하게 규정한 요건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게 근로자들의 주장이다. 근로기준법은 경영상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기 위한 실체적 요건으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상자 선정 ▲근로자 대표와의 성실한 협의 등을 정의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락앤락이 정리해고를 할 정도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나 관련 지표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신규 채용 등 정리해고와 모순되는 행동을 하고 있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다고 지적한다.
희망퇴직 접수 외에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해고 회피 노력)을 하지 않았고,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인원 전체를 해고(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상자 선정)한 점 역시 부당해고를 주장하는 배경이다. 아울러 회사가 근로자대표와 고용안정위원회를 진행하며 근로자대표가 요구한 여러 자료도 제출하지 않아 ‘근로자대표와 성실한 협의’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손세호 화섬식품노조 락앤락 지회장은 “구체적인 판정 사유 등은 판정서가 나와야 확인이 가능하지만, 단체협약 위반과 근로기준법 해고 요건 미충족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락앤락은 김준일 전 회장이 1978년에 설립한 생활용품 기업이다. 대표 제품인 밀폐용기 등을 전 세계 120여개국에 수출하는 등 성장가도를 달렸다. 2010년에는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도 상장했다.
그러나 지난 2017년 홍콩계 사모펀드(PEF)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너티)가 김 전 회장의 지분 전량(3496만1267주)을 인수하며 주인이 바뀌었다. 이후 밀폐용기 의존도를 낮추고 종합생활용품 업체로 탈바꿈 하는 등 체질개선을 시도하며 매출을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기대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지 못했다. 매출 30%를 차지하는 중국사업의 부진 등이 원인 중 하나로 평가됐다. 제조원가도 오르면서 수익성은 더욱 악화됐다. 락앤락은 지난해 211억원의 영업손실로 적자 전환했다.
반면 어피너티는 수백억원의 배당금을 받아갔다. 적극적인 배당 정책을 놓고 ‘폭탄 배당’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락앤락은 현재 안성사업장 생산·물류 기능을 외부 업체로 각각 아웃소싱한 상태다. 국내 생산은 이어가고 있지만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생산하는 방식은 포기한 것이다.
또 어피니티는 지난 18일 락앤락 보통주 1314만112주(발행주식 총수의 30.33%)를 주당 8750원에 공개매수한다고 공시했다. 공개매수를 통해 완전자회사로 만든 뒤 자발적 상장폐지를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들은 회사가 주주들에게는 수백억원을 배당하면서 경영실패의 책임을 구조조정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전가한다고 지적한다. 지회는 노동절인 다음 달 1일 서울 종로구 어피니티 앞에서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의 원직복직, 상장폐지 철회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