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한 집이 생긴다는 것은 단지 공간이 생긴다는 것보다 큰 의미다.

추억과 이야기, 취미와 새로운 삶의 모습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삶의 장면들이 수집된다. 가족의 이야기를 수집 중인 집에서 나눈 이야기들.

거실에 놓인 라운드 테이블은 유앤어스youandus.co.kr에서 제작한 것.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공간으로 가장 활용도가 높다. 벽면에 걸린작품은 오병욱 작가의 ‘Sea of My Mind’.
거실에 놓인 라운드 테이블은 유앤어스youandus.co.kr에서 제작한 것.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공간으로 가장 활용도가 높다. 벽면에 걸린작품은 오병욱 작가의 ‘Sea of My Mind’.
테이블과 면한 거실. 데이베드와 작품으로 간결하게 스타일링했다. 작품은 왼쪽부터 권용래 작가의 ‘The Eternal Flame’, 윤종주 작가의 ‘cherish the time-line’.
테이블과 면한 거실. 데이베드와 작품으로 간결하게 스타일링했다. 작품은 왼쪽부터 권용래 작가의 ‘The Eternal Flame’, 윤종주 작가의 ‘cherish the time-line’.
 혜경 씨의 어머니는 교사로 재직후 취미로 민화를 그리고 있다. 혜경 씨는 어머니에게 선물받은 민화를 모리함의 액자와 함께 복도에 걸었다. 
 혜경 씨의 어머니는 교사로 재직후 취미로 민화를 그리고 있다. 혜경 씨는 어머니에게 선물받은 민화를 모리함의 액자와 함께 복도에 걸었다. 

갤러리 같은 집

박혜경 씨 가족이 이사를 결심한 것은 4년 전이다. 결정은 비교적 쉬웠다. 두 아들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부부와 자녀의 삶이 분리되기에도 적당한 평수였다. 아쉬운 건 공간이었다. 지은 지 20년이 훌쩍 넘은 구축인 데다 증축 당시 시공된 마감재와 구조가 그대로였다. 가족의 삶을 담기 위한 공간으로 쓰임을 바꾸기 위한 리노베이션이 필요했던 것.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가족의 휴식이죠. 바쁜 일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어요.” 혜경 씨의 이야기처럼, 이 집에서 가족이 누려야 할 것은 오롯한 휴식이었다. 이 가족이 원하는 휴식의 형태는 이랬다. 가족이 함께 고심해 고른 작품이 조화로운 공간일 것, 대화가 오가는 거실이 있을 것, 음악이 취미인 두 아들과 아버지가 마음껏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 이 가족의 이야기를 공간에 구현해 나간 건 디자인 고요@ko________yo의 고효정 대표다. 공간 전면을 확장하고, 구조를 변경하고, 이들의 삶에 맞는 아이디어를 곳곳에 적용했다. 고효정 디자이너가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미니멀한 디자인이었다. 웜 그레이톤의 바닥 타일과 따뜻한 물성을 지닌 주방 상판의 석조, 깨끗한 벽면과 천장 위의 레일 조명까지. 마치 갤러리를 연상케 할 만큼 깨끗한 선을 지닌 집으로 연출해 여백을 마련한 것은 혜경 씨의 애정에서 가족의 공통 관심사로 확장된 컬렉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작품 하나를 들일 때마다 함께 모여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편이죠. 그래서인지 어느 하나 아끼지 않는 것이 없어요. 모든 게 가족과의 추억처럼 느껴져요.” 거실 벽면에 걸린 윤종주 작가의 화폭부터 창가 곁에 놓인 전아현 작가의 작품, 그리고 혜경 씨의 어머니가 직접 작업한 민화까지. 가족을 하나로 연결해 준 작품이 가져온 가족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수집된 집이 완성된 셈이다.

창가에 놓인 전아현 작가의 ‘심산’.
창가에 놓인 전아현 작가의 ‘심산’.
김지아나 작가의 Yellow inside yellow 21-38.
김지아나 작가의 Yellow inside yellow 21-38.
혜경 씨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집의 시간. 거실의 라운드 테이블에 앉아 가족과 함께, 또는 혼자 정취를 즐긴다. 
혜경 씨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집의 시간. 거실의 라운드 테이블에 앉아 가족과 함께, 또는 혼자 정취를 즐긴다. 

 

벽면에 걸린 고지영 작가의 그림과 저희 집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요.

언뜻 차갑다 느낄 수 있는 컬러를 활용했지만

더없이 따뜻한 무드를 갖춘 집이요.

음악실에 놓인 피아노 곁에는 우종택 작가의 Memory of origin ‘ ’이 걸렸다
음악실에 놓인 피아노 곁에는 우종택 작가의 Memory of origin ‘ ’이 걸렸다
기존 가구와 어울리도록 마감재를 배치하고, 포인트 조명을 스타일링해 미니멀하게 꾸민 마스터 베드룸.
기존 가구와 어울리도록 마감재를 배치하고, 포인트 조명을 스타일링해 미니멀하게 꾸민 마스터 베드룸.
자녀 방은 본래 발코니로 쓰이던 공간을 확장한 후, 철거가 불가했던 단상을 침대처럼 활용했다.
자녀 방은 본래 발코니로 쓰이던 공간을 확장한 후, 철거가 불가했던 단상을 침대처럼 활용했다.

취향 만족 공간

집이 지닌 무드를 완성한 이후 해야 할 일은 각각의 공간이 지닌 역할을 고려한 스타일링이다. 고효정 대표는 거실과 취미 방, 개인실에 모두 가족이 원하는 휴식을 반영한 공간을 연출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 거실이다. 탁 트인 공간에는 TV 대신 우아한 라운드 테이블이 자리한다. 이 테이블은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단순하고 정갈한 공간에 곡선을 지닌 테이블이 놓여 부드러운 무드를 더해 주는 한편 가족이 모이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로서의 기능도 하기 때문. “거실에는 소파 대신 테이블을 두고 싶었어요. 가족 간에 가장 중요한 건 대화니까요. 이제는 대학생이 된 두 아들은 외부 활동으로 바쁜 일이 더 많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하루쯤 다 같이 시간을 내 저녁을 먹고 와인도 마시며, 꿈꾸는 미래와 일상에 서 겪은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를 공유해요.” 이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이 거실 안쪽에 하나 더 있다. 혜경 씨 남편의 오랜 취미인 피아노가 놓인 음악실이다. 아빠를 따라 어릴 때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다양한 악기를 익혀온 형제도 이곳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지나치게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방음 시설 대신 헤드폰을 사용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일런트 시스템을 이용해 아파트에서도 취미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함께’의 시간 이후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미니멀한 동시에 효율적이다. 침실의 기능에 집중하되 포인트 조명으로 온전 한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완성한 마스터 베드룸, 창가 단상을 활용한 침대가 놓인 두 아들의 방까지. “벽면에 걸린 고지영 작가의 그림과 저희 집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요. 언뜻 차갑다 느낄 수 있는 컬러를 활용했지만, 더없이 따뜻한 무드를 갖춘 집이요.” 혜경 씨와 가족은 앞으로 이 집에서 더 많은 추억을 수집하게 될 것이다. 공간이 가족의 화합을 만들고, 가족이 다시 공간을 따뜻하게 덥히는 선순환의 고리 속에 있기 때문이다.


CREDIT INFO

freelance editor     박민정
photographer     김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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