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재판부, 엘리엇 이어 메이슨에도 4백억 배상 판정
“합병에 정부 개입···한미 FTA 공정대우 의무 위반”
엘리엇-삼성물산 민사소송 본격화···“구상금 청구 절차 돌입” 지적도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삼성물산 합병 문제로 한국 정부가 외국 자본에 수백억원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재차 발생했다. 외국 자본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한 약정금 소송, 소액주주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등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15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1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는 헤지펀드 메이슨 캐피탈(메이슨) 측 주장을 일부 인용해 한국 정부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2000만 원, 환율 1368원 기준)와 지연이자 지급을 판정했다.
메이슨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승인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 개입해 주주로서 손해를 봤다며 2018년 9월 국제투자분쟁 해결 절차(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에 한국 정부를 제소했다.
중재판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국내 형사 확정판결 등에서 인정한 사실관계가 그대로 인용하면서, 청와대와 복지부 관계자가 합병 승인 과정에서 국민연금 의사결정에 개입한 행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국가가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로서 한국 정부에 귀속되므로 국가 책임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배상 판정은 삼성물산 합병 관련 ISDS에서 한국 정부가 두 번째로 패소한 사례다. 지난해 6월 한국 정부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Elliott Associates, L.P.)과의 ISDS에서 패소해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 7억7000만 달러 가운데 5358만6941달러(당시 기준 약 690억 원)와 지연이자를 물게 됐다.
법무부는 세금의 불필요한 지출을 막는다는 명목아래 대응책을 강구 중이다. 사건 구조가 유사한 엘리엇 사례처럼 법무부가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 삼성물산-엘리엇 ‘비밀합의’ 민사소송 시작···소액주주 손배 청구도 있어
메이슨 국제분쟁 선고와 맞물려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약정금 소송)도 본격 시작됐다. 엘리엇이 지난해 10월 삼성물산을 상대로 ‘267억2200여만원 규모의 약정금’을 달라며 제기한 소송이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재판장 최욱진) 심리로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이 소송은 2015년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며 법원에 제기한 주식매수청구가격 소송을 취하하면서 삼성물산과 맺은 ‘비밀합의’와 연관된 소송이다. 비밀합의를 통해 2022년 5월 삼성물산으로부터 659억여 원을 지급받은 엘리엇은 기지급된 약정금의 이자적용 시점을 문제 삼으며 추가 소송을 냈다.
이날 기일에서 엘리엇 측은 “주식매입가격 및 이전에 관한 합의서에 따른 약정금을 청구한다. 2016년 3월 7일 이후 지연이자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삼성물산 측은 “지급 의무를 다했다”고 맞섰다.
◇ 외국 자본만 배상?···국민연금·국내 주주들 ‘역차별’ 논란
국재분쟁 불복절차와 별개로 세금으로 지급될 배상금을 어떻게 상환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아울러 엘리엇과 메이슨은 배상 받고 정작 국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은 배상 받지 못하는 역차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도 주목된다.
참여연대는 법무부가 엘리엇과 메이슨에 물어줘야 할 국민 혈세에 대한 책임을 주 책임자인 삼성물산과 이재용 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게 묻는 구상권 청구 절차에 즉각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리엇과 메이슨 중재판정에서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승계 목적으로 인한 이재용 회장의 뇌물 공여와 정부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고 결국 주주들의 손해로 이어졌다는 외국 자본의 주장이 인정됐다는 게 연대 측 설명이다.
연대는 또 국제 중재판정도 연이어 패배하면서 정작 이재용 삼성물산 불법합병 형사사건에서는 전부 무죄가 나오는 상황을 ‘모순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국제통상 전문인 송기호 변호사도 “엘리엇과 메이슨의 국재중재판정에 무효 소송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삼성 등에 대한 배상 책임을 검토해야 한다”고 공개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국제중재 무효 소송은 국제법상 매우 예외적이고 한정적인 사유만을 따지는 절차”라면서 “(무효 소송은) 배상액 이자만 늘고 국가재정 부담만 가중시키게 된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삼성물산 주주들이 ‘부당 합병’을 문제삼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지난 2월 29일 첫 변론이 진행됐다. 재판부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이 회장의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 2심 결과를 보고 진행하겠다며 기일을 미룬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