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IMF·911 테러 등 위기에 선제적 투자로 극복
스카이팀 결성 및 IATA 위원으로 글로벌 항공업계 중심 역할
조양호 선대 회장 일대기 담은 ‘지구가 너무 작았던 코즈모폴리턴’ 평전 출간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 회장. / 사진=한진그룹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 회장. / 사진=한진그룹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 회장의 경영업적이 재조명받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으로 세계 10위권의 초대형 항공사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그 이전에 대한항공과 한국 항공산업 성장을 이끌며 토대를 마련한 조양호 선대회장의 업적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 항공산업은 해외 여행 자유화가 풀리기 이전인 1989년 전만 하더라도 해외 여행객이 100만명을 넘지 못해 글로벌 항공업계에선 변방국 취급을 받았지만, 해외 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해마다 출국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1987년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해외 관광은 45만여명 수준에 머물렀으나 1989년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으며 1992년 204만명, 2000년 550만명, 2005년 1008만명, 2016년 2238만명, 2019년 2871만명 등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을 방한한 외국인 여행객도 1989년엔 272만명이었으나, 지난 2019년엔 1750만명까지 증가했다.

조 선대 회장은 해외 여행 자유화 시기에 대한항공 사장에 취임하면서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 위기를 기회로

조양호 선대 회장은 1974년 12월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래 항공·운송사업 외길을 45년 이상 걸어온 항공 ‘전문가’다. 조 선대 회장은 정비, 자재, 기획, IT(정보기술),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전 부서들을 두루 거쳐 실무까지 겸비했다. 이후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 반열에 올렸다.

조 선대 회장이 처음 대한항공에 발을 들인 1974년은 전세계적으로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인 시절이었다. 이어 1978년부터 1980년에도 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대한항공도 피해가 컸다. 연료비 부담으로 미국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과 유나이티드항공은 수천명의 직원을 감원했다.

LA타임즈에 소개된 조양호 선대 회장. / 사진=한진그룹
LA타임즈에 소개된 조양호 선대 회장. / 사진=한진그룹

이런 위기 속에서 조 선대 회장은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함께 원가를 줄이는 대신, 시설과 장비 가동률은 높이는 전략을 펼쳤으며 항공기 구매도 계획대로 진행했다.

불황이 지나고 호황이 올 것을 대비한 것이다. 이같은 결정은 오일 쇼크 이후 새로운 기회로 떠오른 중동 수요 확보 및 노선 지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1997년 외환위기 극복 과정도 눈여겨볼 만 하다. 외환위기 당시 대한항공은 운영 항공기 112대 중 임차기 14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체 소유 항공기였다. 외환위기에 항공기 매각 후 재임차 등을 통해 IMF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보잉사 주력 모델인 B737-800 및 B737-900 기종 27대에 대한 구매 계약을 체결한 것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보잉은 대한항공 측에 감사의 뜻으로 계약금을 줄이고, 금융까지 유리하게 제공했다.

추후 이들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차세대 항공기 도입도 마찬가지다. 2003년은 이라크 전쟁, SARS, 9.11 테러의 영향이 남아있어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됐던 시기다.

하지만 조 선대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구매계약을 맺었다. 2006년 이후 세계 항공시장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항공사들은 앞다퉈 차세대 항공기를 주문하기 시작했으나 넘치는 주문을 제조사들이 감당하지 못해 새 항공기 도입까지 시간이 지체됐다. 이 가운데 대한항공은 선제적 항공기 도입으로 다른 항공사보다 빠르게 노선 확대 등 대응에 나설 수 있었다.

아울러 조 선대 회장은 전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LCC)간 경쟁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보고 변화에 나섰다.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LCC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조 전 회장은 2008년 7월 진에어를 설립하고 LCC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다.

◇ 대한항공, 글로벌 항공사로 우뚝

조양호 선대 회장은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하면서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산업 중심으로 이끌었다.

1990년대 후반 세계 항공업계는 동맹체로 재편됐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스타얼라이언스’를, 아메리칸항공은 ‘원월드’를 각각 창설했다. 이에 2000년 조 선대회장 주도로 대한항공,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 등 4개 항공사는 스카이팀을 출범했다.

스카이팀 출범식. / 사진=한진그룹
스카이팀 출범식. / 사진=한진그룹

또 아시아 지역 항공사들을 스카이팀 회원사로 영입하는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같은 노력으로 현재 스카이팀은 170개국, 20여개 항공사, 1000여개의 취항지를 연결하는 글로벌 항공 동맹체로 성장했다.

특히 2018년 닻을 올린 델타항공과의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는 글로벌 항공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조 전 회장은 스카이팀 창설 뿐 아니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IATA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이자 31명의 집행위원회 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의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으로 IATA 주요 전략 및 세부 정책 방향, 연간 예산, 회원사 자격 등 굵직한 결정을 이끌었다.

이에 따라 ‘항공업계의 UN 회의’라고 불리는 IATA 연차총회가 지난 2019년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리기도 했다. 서울 IATA 연차총회는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변방이 아닌 전 세계의 중심이 됐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 밖에도 지난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재임 기간 동안 지구 16바퀴를 돌며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으며, 공로를 인정 받아 2012년 1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중 첫째 등급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 지구가 너무 작았던 항공업계 巨木

이같은 조양호 선대 회장 업적을 기려 최근 평전 ‘지구가 너무 작았던 코즈모폴리턴’이 출간됐다.

조양호 선대 회장 일대기를 담은 평전이 지난 4월 8일 공개됐다. / 사진=한진그룹
조양호 선대 회장 일대기를 담은 평전이 지난 4월 8일 공개됐다. / 사진=한진그룹

평전에는 조양호 회장의 ‘수송보국’ 정신을 담았으며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서 우뚝 설 수 있게 만든 노하우, 경영철학, 모든 사람들이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시스템경영론’ 등 그가 생전에 그린 생각과 실천 등을 풀었다.

특히 외환위기 극복과 스카이팀 결성,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등과 관련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일화는 물론, 사진이 취미였던 그가 직접 앵글에 담은 작품 사진들도 다수 수록했다.

평전은 조 선대회장의 세계주의적 철학과 그만의 원칙을 그린 ‘함께해서 멀리 간 아름다운 코즈모폴리턴’, 임직원을 아끼고 아이들을 사랑한 인간적인 면모가 담긴 ‘따듯하게 조용하게’를 비롯해 ‘몰입의 기쁨을 만끽한 노력가’, ‘얼리&딥 어답터 깊이의 경영공학자’, ‘열공하는 기업, 공부 권하는 CEO’, ‘평창의 승리를 이끈 열정의 민간외교가’ 등 총 10개 챕터로 구성했다.

추천사는 조 선대회장과 교분이 두터웠던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직접 작성했다.

손 회장은 “세계 항공 역사에서 조 선대 회장과 같이 전문성과 지속가능성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경영자는 없다. 단언컨대, 1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항공전문가”라며 “조 선대회장이 타계한 후에도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이 흔들림 없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생전에 그토록 탄탄하고 정교하게 갖춰놓은 시스템의 위력을 방증한다”고 했다.

또한 “이 책에는 생전에도, 타계 후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조 선대 회장의 진면목을 적잖게 볼 수 있는 일화가 많다”며 “책 속에서도 그는 생전처럼 열심”이라며 일독을 권했다.

올해 창립 79주년을 맞은 한진그룹은 조 선대 회장의 타계 이후 추모사업 일환으로 평전 출간을 준비해 왔다. 추모사업은 조 선대 회장의 경영 철학을 되새기고, 나아가서는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으로서 발전사를 조명하고자 마련됐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