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나 대통령실과 의견 조율 미비 가능성···수험생이나 학부모에 영향 줄 사안에 신중해야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8일 브리핑에서 한 발언은 지금도 배경이 궁금한 대형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민감한 시점에서 ‘의대 증원 1년 유예’를 검토하겠다는 발언은 단순한 실언인지 아니면 혹시 대통령실과 의견 조율이 안 돼 발생한 사고인지 아리송한 대목이다.
박민수 차관은 8일 브리핑에서 의대 증원과 관련된 정부의 유연한 입장 설명에 중점을 뒀다. 그는 의료계의 증원 축소 주장과 관련, “학교별 배정을 (이미) 발표해서 (다시) 되돌리면 또 다른 혼란이 예상된다. (증원을 축소하거나 철회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임이 틀림없다”면서도 “신입생 모집요강이 최종 정해지기 전까지는 물리적으로 변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사실 박 차관의 이 발언도 그동안 정부 입장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5월 하순으로 예상되는 ‘2025학년도 대입전형 수시모집요강’ 공고 이전 변경이 가능하다는 언급을 내놓은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에 제안한 내용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박 차관 답변이 나오자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증원 1년 유예’ 안에 대해 그는 “과학적이고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면 열린 자세로 논의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며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고 일단 (증원을) 중단하고 추가 논의를 해보자는 취지로 이해한다.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는 합리적 근거 제시를 강조해왔는데 ‘증원 1년 유예’ 안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도 아니라면서 왜 내부 검토하겠다고 답변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한 전국 의대별 배정 계획을 발표해놓고 교육부가 작업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1년 유예 안을 내부 검토하겠다는 언급은 수험생과 부모들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특히 신중한 답변이 요구됐던 사안이다. 의료계 내에서도 합의가 되지 않았던 ‘증원 1년 유예’ 안을 복지부 내부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언급은 충격적이었다는 표현도 가능하다.
이같은 느낌은 빗나가지 않았다. 복지부는 이날 오후 2시 55분 보도설명자료를 기자들에게 보내 1년 유예안은 내부 검토된 바 없으며 향후 검토 여부도 결정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동일한 내용의 보도설명자료는 3시 26분에도 발송됐다. 동일한 자료를 30분 간격으로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사안이 민감하고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사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정부는 그간 (증원 1년 유예 안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향후 검토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그렇다면 박 차관은 공식 브리핑에서 왜 의대 증원 1년 유예 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혀 이같은 논란을 초래한 것일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동안 과로가 누적되면서 박 차관이 실수했을 가능성이다. 그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나 실언은 할 수 있다. 그동안 박 차관이 ‘의새’ 발언 등 브리핑에서 실수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날이 월요일이고 그의 업무 집중도가 높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실수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한 관가 관계자는 박 차관이 실수할 사람이 아니며 특히 민감한 주요 현안에 대해 실수할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기자 생각도 동일하다.
다른 사유는 대통령실과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았던 부분일 가능성도 있다. 의대 증원과 관련, 많은 사안이 검토되는 상황에서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에서 정부와 대화하자는 온건파가 검토하는 복수안 중 하나가 ‘의대 증원 1년 유예’다. 만약 입장 정리나 의견 조율이 미비했다면 아쉬운 부분이다.
어떤 사유에서 8일 문제 발언을 했는지는 박 차관 본인만 알고 있다. 그도 국민들과 환자들이 ‘정부는 오락가락, 의료계는 내분’이라는 화두로 양 세력을 불신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박 차관은 향후 발언 하나하나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차분하게 답변해야 한다. 만약 이같은 논란이 다시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그가 제일 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