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7개 상가군 공원화 계획 확정
중심부 PJ호텔 부지 확보 난관 예상
유네스코, 종묘 경관 훼손 여부 조사 나서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중심부에 초고층 건물과 축구장 7개 크기의 공원을 조성하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세운지구) 개발이 본격 추진을 앞두고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사업면적이 커 이해관계자가 많다보니 부지 확보부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유네스코가 세운지구 개발이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경관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에 나서는 등 문화재 이슈도 변수로 떠올랐다.

◇‘녹지축 중심부’ 삼풍상가·PJ호텔 먼저 공원으로

4일 서울시와 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정비촉진계획 변경 결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변경안엔 상가군을 공원화하기 위한 세부안이 담겼다.

세운지구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쪽 종로, 남쪽 퇴계로와 접한 직사각형 부지다. 부지 면적만 44㎡에 달해 서울 사대문 안에서 개발되는 마지막 대규모 개발지로 불린다. 현재 세운상가를 포함한 7개 상가군(세운·청계·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 양옆 8개 구역에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는 7개 건물을 허물어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녹지축을 조성하고 양 옆으로 30~40층 고층 빌딩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2035년 완공이 목표다.

/ 그래픽=시사저널e
/ 그래픽=시사저널e

서울시는 삼풍상가와 PJ호텔을 도시계획시설 상 공원으로 지정해 우선 개발에 나선다. 도시계획시설은 도시관리계획에서 규정된 법적 절차를 통해 조성하는 기반시설을 의미한다, 삼풍상가와 PJ호텔이 있던 자리엔 1만1000㎡ 면적의 도심공원이 조성된다. 지하엔 1500석 규모의 뮤지컬 전용 공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상가에 대한 협의 매수를 시도해보고 안 되면 수용도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도시계획시설 상 공원으로 지정하면 감정가로 일대 상가를 수용할 수 있다. 앞서 2009년 가장 북쪽에 있던 현대상가가 이 같은 방식으로 공원화됐다.

나머지 상가들은 주변 지역과 함께 재개발하는 방식으로 공원화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정비사업을 시행할 때 상가 건물이 이전할 토지를 해당 사업자로부터 기부채납 받은 후 해당 부지와 상가를 추후 통합 개발할 예정이다. 이는 상가 소유자들이 인근에서 영업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공원화를 원활하게 진행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세운상가와 대림상가 등은 소유자가 많아 강제 수용이 어렵다고 평가된다.

◇PJ호텔 영업의지 밝히며 녹지축 조성 차질 우려

다만 녹지축 조성부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심부에 위치한 PJ호텔 부지 확보에 변수가 생겨서다. PJ호텔 측은 서울시에 호텔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이번 매입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서울시는 대안으로 PJ호텔을 주변 개발 부지(세운지구 6-1-3구역)와 통합해 개발하고 기부채납 토지로 PJ호텔 부지를 받아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통합개발할 경우 토지주 간 협의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개발 주체들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서 지분을 놓고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는 수용도 간단치 않다. PJ호텔이 수용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PJ호텔 측이 개발에 따른 영업손실을 이유로 ‘토지수용 보상금 증액’ 소송 등을 걸 가능성도 있다”며 “녹지축 중심부에 속하는 PJ호텔이 진행되지 않으면 전체 사업이 흔들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는 삼풍상가는 물론 다른 상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운지구 중심축 도심공원 우선 추진 조감도  / 자료=서울시)
세운지구 중심축 도심공원 우선 추진 조감도 / 자료=서울시)

상가뿐 아니라 주변 토지주·세입자들과 협의도 넘어야 할 산으로 꼽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세운지구 수용 가능성을 언급한 뒤 이들은 서울시 수용 계획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운지구에서 가장 비중이 큰 업종이 인쇄업인데 종사자 수만 약 1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또 소가전 제품, 방송통신장비, 전자부품, 조명 판매 점포들도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종묘 경관 훼손 지적에 유네스코 나서

최근엔 문화재 이슈도 등장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최근 세운지구 개발 계획과 관련해 문화재청에 종묘 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운지구 내 고층 재개발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의 경관 가치를 훼손하는지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서다. 앞서 지난해 7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유네스코에 민원을 제기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종묘 일대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를 근거로 세운지구에 최고 200m 높이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면 종묘 정전에서 바라볼 때 건축물 윗부분 120m가 눈에 들어온다고 주장했다. 이는 김포 장릉 앞 고층 아파트 사태와 유사하다. 2010년 문화재위원회가 종묘의 역사성과 역사문화환경 보존을 위해 정한 높이 기준은 ‘종묘 정전에서 상월대를 바라볼 때 건축물 최상부 3개 층 이하’다. 종묘를 둘러싼 숲으로 현대식 건물을 가릴 수 있을 정도의 개발만 허용해 의례 공간의 원형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였다.

업계에선 유네스코 조치에 주목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과거에도 세계 유산 경관을 훼손하는 개발을 막은 사례가 있다. 영국 런던시가 세계유산인 런던 타워 인근에 216m, 303m 높이의 건물을 신축하는 계획을 발표하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현지 실사단을 파견해 경관적 요소의 보호와 고층건물 신축에 대한 지침 마련을 요구했다. 런던시는 결국 건물 신축 계획을 철회했다.

세운지구 개발 조감도. 개발 부지 위쪽에 종묘가 자리하고 있다  / 자료=서울시
세운지구 개발 조감도. 개발 부지 위쪽에 종묘가 자리하고 있다  / 자료=서울시

세계유산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 세계문화유산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해양 무역 도시의 역사성을 평가받아 2004년 세계유산에 역사도시로 등재됐던 영국 리버풀은 항구 주변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으로 가치가 손상되자 2021년 지정이 취소됐다. 당시 유네스코는 “도심 재개발로 경관이 심하게 바뀌고 지역의 보편적 가치가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됐다”고 지정 취소 사유를 밝혔다.

서울시는 해당 지역이 역사문화 보존지구가 아니고 종묘 경관도 훼손되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세운지구는 문화재 규제 지역(100m 이내) 밖에 있어 문화재 보존지역이 아니어서 개발을 위해 문화재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고 높이를 규제할 법적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세운지구는 종묘와 170m 떨어져 있다. 또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세운지구와 가까운 구역인 4구역은 도로변 55m, 뒷면 72m로 높이를 규정하고, 2구역도 종묘에서 바라보는 수목선 기준으로 높이를 제한해 경관을 해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4구역 외 나머지 3·5·6구역은 박원순 전 시장 때 90m로 제한했던 높이를 최고 203m로 완화했다”며 “해당 구역은 종묘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높이 올라가더라도 경관에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말 종묘 경관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담은 자료를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유네스코가 요청한 보고서는 문화재청이 최종 정리해 제출한다.

세운지구는 오 시장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힌다. 개발 움직임이 시작된 건 오 시장 재임 시절인 2006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다. 오 시장은 당시 취임 이전부터 세운지구를 ‘개발공약 1호’로 내세울 만큼 개발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2009년엔 이번 개발 계획과 비슷한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했다. 세운상가군을 전면 철거하고 그 자리에 종묘와 남산을 잇는 폭 90m, 길이 1km의 녹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인근 8개 구역은 최고 122m(36층) 높이의 주상복합을 건설해 코엑스몰급의 입체적인 도심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다만 당시에도 부동산 경기 침체와 함께 문화재청이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앞에 고층 건물을 짓는 계획에 제동을 걸면서 사업에 타격을 입었다. 1조 원에 달하는 이주보상비 등 수익성 문제에 여러 문제가 겹치며 2010년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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