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 가스 운송 분야···다방면 밸류체인 구축
계열사 매출 비중 줄인다···풍부한 현금 곳간 통한 투자 가속화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세계 3위 자동차운반선사 현대글로비스가 해운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동차 운반선 부족으로 자동차 수출 물류난이 심화하자 신규 자동차운반선(PCTC) 도입을 통해 선복량 확대에 나선 가운데 액화석유가스(LPG),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운송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과거 현대·기아차 의존도가 높아 자력으로 해운업을 운용하기엔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고 자력 성장을 이루겠단 전략을 세웠다. 2조5000억원이 넘는 풍부한 현금 곳간을 활용한 공격적인 사업 확장 전략을 통해 독자적인 이익 구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글로비스는 카타르 국영 기업 카타르에너지로부터 LNG 운반선 4척의 장기 용선 계약을 따냈다. 회사는 카타르에너지가 진행한 LNG 해상운송 2차 입찰에 일본 선사인 가와사키 기선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다. 양사는 2027년부터 해당 선박들을 공동 운용한다.
현대글로비스는 자동차 운반, LPG 운송에 이어 LNG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앞서 현대글로비스는 지난달 첫 자체 가스운반선 2척을 도입하면서 가스 해상운송 사업을 본격화했다. 해당 선박은 8만6000㎥의 LPG를 선적할 수 있다. 특수 재질로 제작된 화물창을 적용해 향후 암모니아 운송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현대글로비스는 기존 자동차 운반에 치중됐던 해상운송 포트폴리오에 연료 운송 분야를 더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 중이다. 기존 자동차선 87척, 벌크선 10척, 탱커선 10척에 이어 올해만 신규 가스운반선(VLGC) 6척을 선대로 확보했다.
◇ 높은 그룹 의존도, 공정위 리스크로···결국 정의선·정몽구 지분 매각
그간 현대글로비스는 완성차 해상운송 부문에 사업 역량을 집중해왔다. 회사는 현대차와 기아의 완성차 해상운송 등을 담당하기 위해 출범한 만큼 그룹 내부 물량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지난해 기준 PCTC 부문은 해운사업 전체 매출의 약 75%를 차지했다.
현대글로비스의 실적을 좌우하는 PCTC 사업이지만, 현대차그룹 의존도가 높은 탓에 오너일가의 사익편취가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현대글로비스 내부거래율은 해외 계열사를 포함해 76.5%에 이른다. 사실상 내부거래로 성장해 내부거래로 유지되고 있는 회사인 셈이다.
지난 2021년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 지분율 20% 이상인 상장사를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대상으로 판단한다. 기존에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이어야 규제대상으로 봤다.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 이상이거나 연매출의 12% 이상이면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대부분의 물류 사업을 현대차그룹으로부터 수주하는 현대글로비스의 사업구조는 일감 몰아주기로 해석될 여지가 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은 지분율 변화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망을 피했다. 지난 2022년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 그룹에 매각하면서 규제 대상 조건인 ‘지분율 20% 이상’ 여부를 벗어났다. 두 사람의 합산 지분은 기존 29.9%에서 19.9%로 낮아졌다.
◇ 사업 다각화로 ‘자립’ 나서···자동차 운반선도 투자 지속
이후 현대글로비스는 “내부일감에 의존해서는 자립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본격적인 체질개선에 나섰다. 회사는 현대차·기아에 의존하기보다 해외 고객으로 확장을 해야 성장의 기회가 보인다고 판단, 에너지 운송 분야에 진출하며 자동차선 운송 중심의 해운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왔다.
가스 해상운송 영역 첫 진출 시점은 지난 2019년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에너지 기업인 우드사이드와 최대 15년 장기계약을 맺고 LNG 운송사업에 진출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배가 인도되는 올해 중순부터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기선을 운영하는 컨테이너선사와 달리 현대글로비스는 PCTC 등 부정기선을 주로 운용해왔다. 해당 계약을 비롯해 카타르에너지와의 장기계약으로 안정적인 수익처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동차 운반 부문에도 투자를 지속한다. 회사는 지난 6일 세계 최대 규모 PCTC 4척을 도입하기로 했다. 전 세계적으로 PCTC 선복 부족 현상이 지속되면서 용선료 인상, 운임 인상이 이어지고 있어 선복량 증대를 통해 물류 리스크에 대응한다는 의도다.
현대글로비스 PCTC 부문 비계열사 비중은 지난 2021년 61%까지 확대됐으나 2022년 55%, 2023년 48%로 지속 하락했다. 현대차·기아의 수출 물량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레 비계열사 비중이 준 것이다. 향후 회사 실적은 수익성이 높은 비계열사 물량 확보에 달린 셈이다.
현대글로비스는 PCTC 부문 보유 선박과 용선을 포함해 현재 83척 규모 선대를 오는 2027년 110척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2년간 PCTC를 최대 12척 추가 도입한다. 이를 통해 비계열사 비중을 늘리고, 이를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목표다.
회사가 보유한 풍부한 유동성은 선복량 확대 전략에 힘을 싣을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글로비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는 2조229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310억원 증가했다.
한편 국적 해운사 HMM 역시 지난해 자동차 운반선 7척을 신규 발주했다. 지난 2002년 자동차 운송사업 부문을 매각한 지 22년 만이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LNG, LPG 등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스 운송과 더불어 미래 에너지로 꼽히는 수소 운송을 위한 역량도 확보하겠다”며 “이를 통해 자동차선 시장을 넘어 가스 해상운송 영역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선보이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