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를 닮은 집

건축가 이수빈•백종웅 씨는 자신들을 형상화한 가구로 집 안을 하나씩 채워 나간다. 길고 낮은 가구들로 남겨둔 너그러운 여백. 두 사람을 닮아 따뜻하고 반듯한 공간이다.

동그란 다리가 돋보이는 수납장에 턴테이블과 LP, CD 등을 보관하고, 이사무 노구치 조명과 식물, 오브제를 조화롭게 배치했다. 전체적으로 가구를 길고 낮게 디자인해 공간의 여백을 최대한 확보했다.

건축가 커플의 닮은꼴 집 찾기

1934년, 알바 알토와 그의 아내 아이노 알토는 헬싱키로 이주해 집을 지었다. 이른바 ‘알토 하우스Alto House’는 두 사람의 자연에 대한 애정, 조화로운 균형감각, 소박한 아름다움이 깃든 이들 삶의 결정체다. 직접 만든 가구 와 손길이 닿은 식물들로 채운 이 공간이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굳이 알토 하우스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집은 사는 사람을 닮아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투영하고자 애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 예비부부인 스튜디오스투키 이수빈 소장과 오더메이드 건축사사무소 백종웅 소장이 함께 꾸민 보금자리는 꼭 알토 부부의 집처럼 그 들의 내면적인 자아를 반하고 있다. “우리를 닮은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되돌아보니 알토 부부가 짓고 살았던 집에서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알토 하우스는 진정 알토 그 자체처럼 보이거든요.” 서울 일대를 빠짐없이 더듬으며 어렵게 발견한 곳은 비록 연식 있는 상가 건물이나, 넓은 거실과 4개의 방을 갖 춘 50평형대 규모. 게다가 별다른 구조 변경과 벽체·바닥 재공사가 필요 없을 만큼 잘 정돈된 상태라는 점에서 두 말없이 합격이었다. 전셋집으로는 최적의 조건을 찾은 두 사람은 ‘이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나가자’는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다.

나무 박스 위에 잎사귀 모양의 유리 상판을 올려 완성한 소파 테이블.
두 사람을 빼닮은 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백종웅•이수빈 씨.
두 사람을 빼닮은 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백종웅•이수빈 씨.

 

서로 다른 저희의 성격을

가구의 물성과 형태에 담아 디자인 했어요.

알토부부가 지은

알토하우스처럼 앞으로도 우리 두사람을 닮은

집으로 가꿔가고 싶어요.

 

이케아 빈티지 테이블에서 감을 받아 디자인한 조명. 테이블의 얇은 환봉을 접합한 방식을 차용했다. 우레탄 필름으로 감싼 셰이드는 높이를 조절해 사용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테이블 조명.
두 사람이 좋아하는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테이블 조명.
따뜻한 분위기의 거실, 주방과는 다르게 모던한 감성으로 꾸민 서재.
따뜻한 분위기의 거실, 주방과는 다르게 모던한 감성으로 꾸민 서재.

동그라미와 마름모의 만남

예상과는 달리 두어 달을 거실을 텅 빈 채로 보낸 이수빈·백종웅 씨. 마음에 쏙 드는 기성 제품을 찾지 못한 커플은 끝내 직접 가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거실 수납장과 가죽 소파, 유리 상판을 올린 소파 테이블이 그 결과물이다. 진열장 다리는 동글동글한 구형, 소파 다리는 각진 마름모 형태인 점이 눈에 띄었다. 여기에는 두 사람의 성격이 반영됐다. “서로 다른 저희의 성격을 가구의 물성과 형태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제가 둥글둥글한 성격이라면, 종웅 씨는 상대적으로 더 섬세한 편이에요. 수납장을 예로 들면 금속의 직선적인 부분은 종웅 씨를, 동그란 목재 다리는 저를 형상화한 거죠(웃음).”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거실•주방과는 달리, 업무 공간인 서재는 차가운 금속 소재의 가구로 꾸몄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커다란 철제 테이블은 이케아 빈티지 제품. 그 옆에 타워크레인처럼 높이 솟은 조명은 테이블과 한 세트처럼 어울리도록 제작한 것. 그런가 하면 온전히 한 사람 만을 표현한 가구도 있다. 종웅 씨가 수빈 씨를 위한 생일 선물로 직접 만든 의자다. “강직함과 연약함이 공존하는 수빈의 이미지를 담기 위해 전체적으로 단단하면서도 얇은 부재들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했어요.” 의자의 이름을 물었더니 ‘이수빈’이라 답하는 백종웅 씨, 최근 목공을 배우며 침실에 둘 협탁을 만들고 있는 이수빈 씨. 두 사람을 닮은 자화상이 한 획, 두 획 정성스레 그려지고 있다.

창을 통해 환한 빛이 들어오는 주방.
창을 통해 환한 빛이 들어오는 주방.
백종웅 씨가 이수빈 씨를 위해 디자인한 일명 ‘이수빈’ 의자. '아빠다리' 자세를 좋아하는 수빈 씨를 위해 좌판을 깊고 넓게 계획했다.
백종웅 씨가 이수빈 씨를 위해 디자인한 일명 ‘이수빈’ 의자. '아빠다리' 자세를 좋아하는 수빈 씨를 위해 좌판을 깊고 넓게 계획했다.

CREDIT INFO

editor     이승민
photographer     김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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