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매입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통해 신약개발 적자 바이오 인수 공통점
CJ제일제당, CJ바이오사이언스 인수 이후 적자 확대에 자금 추가 투입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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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초코파이'로 유명한 오리온그룹이 항체-약물접합체(ADC) 전문기업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이하 레고켐바이오)를 인수에 나선 가운데 지난 2021년 CJ제일제당의 천랩(현 CJ바이오사이언스) 인수와 유사성이 주목받고 있다.

일단 국내 대기업이 바이오벤처 창업자의 구주를 인수하는 동시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최대주주에 오른다는 인수구조가 비슷하다. 또한 피인수기업이 막대한 연구개발비로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는 상황도 유사하다.

CJ바이오사이언스 인수 이후 늘어난 적자에 CJ제일제당 주주들의 불만은 급증한 상태다. 오리온그룹이 레코켐바이오 인수에 대한 주주들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 레고켐 인수, CJ바이오사이언스와 ‘닮은꼴’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15일 오리온과 레고켐바이오가 맺은 인수계약을 놓고 지난 2021년 10월 완료된 CJ제일제당의 천랩 인수계약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리온은 5485억원을 들여 레고켐바이오 지분 25%를 확보할 예정이다. 인수 주체는 중국지역 7개 법인 지주사인 팬오리온코퍼레이션이다. 오리온은 팬오리온코퍼레이션 지분 95.15%를 보유하고 있다.

오리온은 구주매입과 유상증자 참여를 병행해 지분을 확보할 예정이다. 오리온은 787억원을 들여 레고켐바이오 창업자 김용주 대표와 박세진 사장으로부터 주당 5만6186원에 936만3283주를 인수한다. 대금지급 일정은 오는 3월 29일이다.

오리온은 이와 별개로 4698억원을 들여 제3자배정 방식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당 5만9000원에 796만3283주를 받는다.

앞서 지난 2021년 CJ제일제당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CJ바이오사이언스 전신인 천랩을 인수했다. 당시 CJ제일제당은 총 250억원을 들여 최대주주인 천종식 대표와 상해 ZJ 바이오텍으로부터 주당 4만원에 62만5233주(15.99%)를 사들였다. 천 대표는 39만858주(10%), 상해 ZJ 바이오텍은 23만4375주(5.99%)의 주식을 양도했다.

CJ제일제당은 이와 별개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당 3만7465원에 195만4924주를 확보했다. 유상증자 금액은 732억원으로 구주매입과 합해 총 983억원을 투입한 셈이다. CJ제일제당은 이를 통해 천랩 지분 43.99%를 확보했다.

천랩과 레고켐바이오 역시 신약개발 중인 적자 바이오기업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천랩은 천종식 대표가 2009년 설립한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 집합) 전문기업으로 만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2021년 기준 10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레고켐바이오는 LG생명과학 출신인 김용주 대표 등이 2006년 설립했으며 차세대 ADC 원천기술을 통해 항암제를 연구개발하고 기술이전하는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매출 334억원, 영업손실 500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250억원, 영업손실 556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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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먹는 하마될 가능성은?

오리온은 지난 2020년 바이오 사업 진출 선언했지만 그동안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지난 2022년 치과질환 치료제 벤처기업 '하이센스바이오'와 손잡고 오리온바이오로직스(오리온바이오)를 출범하기도 했으나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리온으로서는 레고켐바이오 인수를 통해 바이오사업을 빠르게 안착시킬 수 있다. 오리온은 “레고켐바이오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13건의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고 기술 이전료는 8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인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재무에 부담이 될 정도로 적자 규모가 커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CJ바이오사이언스처럼 ‘돈 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수발표 다음날인 1월 16일 오리온 주가는 11만7100원에서 9만6600원으로 무려 17.51% 급락했다.

CJ바이오사이언스의 적자는 지속되고 있다. 2021년 101억원이었던 영업손실은 2022년 332억원으로 3배로 늘었고 지난해도 321억원에 달했다.

CJ제일제당은 인수 이후에도 추가로 CJ바이오사이언스에 막대한 자금을 넣고 있다. 지난해 5월 22일 CJ바이오사이언스는 649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CJ바이오사이언스 주가는 폭락했고 진통 끝에 유상증자 규모는 456억원으로 축소됐다. CJ제일제당은 220억원을 부담했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유상증자 외에 지난해 12월 CJ제일제당을 상대로 서울 강남구에 있는 건물과 토지를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331억원(부가세 별도)이었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매각목적을 “투자자산 매각을 통한 선제적 자금 확보로 R&D 집중”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CJ제일제당이 CJ바이오사이언스 인수 및 유상증자, 건물매입 등으로 투입한 자금은 1534억원에 달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될 여부는 미지수다.

CJ그룹 최근 임원인사에서 CJ제일제당 대표를 맡고 있던 최은석 대표를 전격 경질하고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를 부회장으로 승진해 CJ제일제당 대표에 임명했다. 이번 CJ그룹 임원인사에서 물러난 임원은 최 전 대표뿐이다. 다른 계열사 대표들은 대부분 유임됐다.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은 레고켐바이오 인수에 대해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레고켐바이오와 함께 글로벌 신약 개발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며 “최대주주로서 사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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